새끼발가락

by 솔라담

"야야, 조심히 다녀와라. 넘어지지 않게 항시 조심하고. 알재. 우리 발가락이 말이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 그놈의 발가락 타령 진짜. 조심할게요. 다녀올게요."


이제는 외우다시피 한 엄마의 기도문을 등 뒤에 남기고 출근길에 나선다. 그놈의 발가락, 발가락. 이해는 간다지만, 좋은 말도 하루이틀이지. 평소면 짜증 섞인 대답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르는 일. 다만 지금은 4월이다. 다들 나이 들고 생긴 알레르기 때문인지 종일 훌쩍거리는 소리만 가득한 우리 집. 우리에게 4월은 눈물의 달. 거기에 한숨 소리까지 보태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아야!"

걱정하지 말라던 아침의 대답이 무색하게 넘어질 뻔했다. 낮은 보도블록 턱에 발이 걸린 것.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지만 유독 튀어나온 새끼발가락 때문일까. 이럴 때 언니는 5분짜리라고 했었다. 발을 부여잡고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눈물이 멈출 때까지 걸리는 시간 말이다.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 툭툭 털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걷고 있지만, 마음속으론 언니에게 푸념하고 있다. 5분이 뭐야 십 분은 울고 싶다고. 너무 아프다고.


사무실에 앉아서 발가락에 밴드를 붙인다. 참 못생긴 발가락. 가끔 언니가 밉기도 하다. 난 내 발가락이 못생긴 줄 몰랐었다. 엄마도 평생 몰랐다던데. 언니가 그걸 꼬집은 이후로 괜히 못생긴 구석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다. 마음에 들어서 산 샌들도 도무지 햇빛을 볼 기회가 안생긴다. 책상 구석 액자 속 언니 얼굴에 눈이 간다. 화장기 없는 학창 시절의 수수한 모습. 아무리 봐도 자기가 제일 못나놓고 누구보고 못생겼대? 한번 흘겨주고 나니 그나마 속이 풀리는 것도 같다.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를 사서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엄마 아빠는 바다에 가시는 날이니까. 역시나 식탁 위엔 맥반석 계란뿐이다. 먹을걸 사 오길 잘했지. 이건 언니가 좋아하는 거고, 나는 솔직히 반숙란이 더 좋다. 맥반석 계란은 목만 매고 난 도무지 그 맛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언니가 맨날 내 머리에 계란을 깨던 기억까지 붙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괜히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내 머리에 계란을 탁 쳐본다.



"아야!"

"아 엄마 언니가 계란 꼬다리로 내 머리 쳤어!"

아마 십 년 전. 언니는 열일곱이었나. 그날 찜질방에서 언니는 여느 때처럼 웃고 있었다. 그 정도면 고작 일 분짜리라면서. 얄미운 표정. 분명 일부러 그런 거다. 계란이 깨지지는 않으면서도 가장 아픈, 그 절묘한 정도를 언니는 기가 막히게 알았다. 아마도 내 머리에 수없이 해본 실험 덕분이겠지.


"야야, 언니가 일부러 그랬겠나. 여, 애미가 깐 거 먼저 묵어라. 고마 징징대라, 쫌."

엄마가 나를 달래주려고 까준 계란. 어느새 훔쳐 가 한입에 털어 넣고 식혜를 들이켜던 언니. 엄마한테 이를까 하고 입을 떼려는데, 언니는 또 그 얄미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내 발을 덥석 잡아당긴다.

"자 엄마 봐봐. 얘 새끼발가락 보여?"

버둥대는 내 발을 던지듯 내려놓은 언니는 이번엔 엄마 발을 끌어다 새끼발가락을 가리켰다.

"우리만 발가락이 이렇게 튀어나왔다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래."

"야야, 참말이네. 내도 지금껏 몰랐는데. 참말이네. 전쟁 통에 흩어져도 우리는 발가락만 보고도 다시 찾겠네."


엄마도 몇십 년을 모르고 살았다고, 신기하다며 웃었다. 괜히 계란에 맞은 머리까지 더 욱신거리는 기분. 심통이 나서 입을 삐죽였다.

"아니, 별것도 아닌 걸 뭐 대단한 발견 나셨다고. 그래 발가락 병신이라서 참 좋겠네요."

최대한 악의를 실어 내뱉었지만 기껏해야 중학생 수준.

"봐봐, 언니나 엄마는 발가락만 못생겼는데 넌 얼굴부터 발끝까지 못생겼으니까 안타까워서 그렇지. 언니가 돈 벌어서 꼭 발가락 성형수술 해줄게. 네 얼굴은 답이 없으니, 그건 포기해야 해."


괜히 까불었다가 몇 배로 돌려받고, 언니가 또 놀린다며 엄마 품에 파고들던 그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또 좋다고 언니랑 누워서 만화책을 봤었다. 나중에 올 때 뭘 사다 줄 거냐며 묻기도 하고, 수면실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들기도 했던 그해 4월의 찜질방. 미화된 기억일진 모르겠는데, 그땐 미세먼지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분명 엄마도 나도 그때까진 4월에 휴지를 끼고 살지 않았으니까.



"콜록, 콜록."

어휴, 이래서 난 맥반석 계란이 별로다. 언니는 이리 퍽퍽한 걸 뭐 그리 맛있다고. 급하게 냉장고에서 꺼낸 식혜를 한 모금 들이켜고 가슴을 탁탁 두드린다. 일어난 김에 아침에 부딪힌 발가락에 밴드를 떼고 연고를 바른다. 근데 진짜 못생겼다. 다른 여자들 발은 마침표처럼 매끈하던데 우리 발은 괜히 쉼표처럼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다. 못생긴 발가락. 어디에 써먹을까.


근데 찜질방에서의 엄마 말이 맞긴 했다. 엄마는 발가락만 갖고 언니를 찾았으니까. 전쟁통 같던 그곳에서. 차가운 침상 위에 누워있던 언니. 채 전신을 덮지 못한 흰 천 아래로 발만 드러나 있었다. 퉁퉁 부은 발. 그럼에도 새끼발가락만은 그대로였다.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그 못생긴 발가락.




"아야."

연고를 바르다 멍든 데를 건드린 걸까. 뼈라도 다쳤나 싶을 만큼 통증이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이 쉼표는 언제까지일까. 엄마는 오늘도 텐트에서 자려나. 아직 밤은 춥던데. 바닷바람은 더 찰 텐데. 그냥 햄버거나 먹을걸, 괜히 계란을 먹은 것 같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답답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내리친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식탁에 있는 휴지를 한 움큼 뽑아 얼굴로 가져간다. 꽃가루 때문일까, 황사 때문일까. 매년 이맘때면 우리 가족은 휴지만 찾는다.


십 년 전, 언니가 사 올 선물을 기다리며 잠들던 4월. 내 발가락은 왜 못생겼는지 고민하던 4월. 언니가 돌아오면 같이 읽을 만화책을 고르던 4월. 그날까지의 4월은 분명 달랐던 것 같은데. 대체 이건 몇 년짜리인 걸까. 나의 4월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와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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