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영화 몇 편을 곁들여서, 잡담
(물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배우 지망생과 재즈 연주자의 로맨스를 다룬 뮤지컬 [라라랜드]는 미넬리나 드미의 영화와 같은 과거의 황금기 시대 뮤지컬로부터 받은 많은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헐리우드라는 세팅을 비롯하여 서사의 보편성과 단순성도 딱히 뮤지컬 전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LA는 묘하게 현실감이 없어서, 뮤지컬의 무대로 기능하는 아름다운 공간들이 주요 관광지처럼 여기저기에 크게 그려져 있는 단순화된 지도 모양으로 생긴 듯하다. 주인공들의 삶도 지금 이 시대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기보다는 어느 시간축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부유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약간 시네마스코프 모양의 예쁜 박스 안에서 공중에 떠올라 추는 춤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주인공들은 다른 삶의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직 사랑과 꿈의 실현에 몰두하며,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얼굴과 비율조차도 그러한 비현실성에 일조한다. 연기와 재즈에 대한 확고한 열정,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과 끝. 이 영화가 붙들고 있는 모든 레퍼런스와 함께 이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다소 회고적이며, 그런 낡은 이야기들과 전성기가 지나간 특정한 영화적 형식들이 가진 끈질긴 힘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에 본 우디 앨런의 [까페 소사이어티] 생각이 났다. 30년대의 헐리우드에 떨어진 두 젊은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이 영화에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어떻게든 성공하는 것 외의 딱히 뚜렷할 목표랄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작중에서 진저 로저스가 언급되는 이 영화야말로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이자 '재즈 시대'라 불리우는 호황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말이다. 보니는 이전에는 배우와 같은 화려한 삶을 꿈꿨지만, 이제는 그런 삶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바비는 사랑의 실패를 겪은 후 헐리우드를 버리고 고향인 브루클린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결국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사회적 성공도 이루지만 서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허영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그들의 눈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꿈 속에 있다. 그들은 다가오는 대공황의 전조와 몰락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고, 곧 사라질 성공의 징표들을 호화롭게 걸친 채로 서로의 눈도, 미래도 아닌 과거만을 들여다본다. 이 영화는 마치 손에 쥔 황금빛 모래처럼 곧 사라질 세계에 대한 부질없고도 아름다운 향수와 미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2010년대를 명목상의 배경으로 한, 그러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고전적이고 기묘한 분위기 속에 있는 [라라랜드]의 헤어진 연인들은 단절된 계절 사이의 어디에선가 (아마도) 알아서 바쁘게 잘 살며 자기 일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뒤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 보인다. 그들은 잠깐 동안 아련한 꿈의 선율에 빠지지만 결국은 현실로 돌아와 그들이 나름대로 성취한 단단한 행복을 손에 쥔 채로 서로를 축하하고 지지하는 신호를 보낸다.
플라네타리움에서 미아(엠마 스톤)을 공중으로 날려보내는 셉(라이언 고슬링)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나는 우디 앨런이 이십 여년 전에 만든 경쾌한 뮤지컬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속 우디 앨런과 골디 혼의 춤이 보고 싶었다. 우디 앨런이 밤의 강변에서 골디 혼을 공중으로 날려보내면서 갑자기 고요하고 아름다운 두 사람만의 마법이 시작되는 그 장면 말이다. '내 사랑은 끝났네'라는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춤은 이미 헤어진 사람들의 춤이다. 스테피(골디 혼)과 조(우디 앨런)는 오래전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었고 아이도 낳았지만 이제 스테피는 조와 이혼하고 조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재혼했으며 조는 이따금 사랑의 실패를 위로받기 위해 그들의 집에 찾아와서 기묘한 우정과 가족애에 의지한다. 춤이 끝난 뒤 스테피는 조의 손을 잡고 말한다. "당신도 알지, 당신처럼 나를 웃게 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시종일관 시니컬한 코미디로 가득한 이 귀여운 영화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이기도 한 이 춤과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너무나 진짜처럼 보이는 무게를 가지고 있으며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그들은 마치 함께 마법처럼 계속되는 아주 긴 춤을 추고 있으며 그렇게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나 자녀를 낳는 것, 백년해로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랑은 그 틈새에서 또는 그 여정에서 완성되고 부서지지 않는다. 나를 특정한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미아와 셉의 사랑이 실패한 적이 있었던가. 이별의 예감 속에서도 "당신을 언제나 사랑할 거야"라고 서로에게 말하는 다정한 사람들의 사랑, 세월이 지나 다른 사람과 함께하게 된 후에도 서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잘 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빙긋 웃어보이는 사람들의 사랑이. 이 영화는 셉과 미아의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아의 자아실현의 서사이며, 셉은 연애의 과정에서 미아에게 글을 쓰라고 권유하거나 결정적인 오디션에 그녀를 데려간다. 그렇게 셉은 미아가 고통스러운 실패를 겪고도 자신을 배우이게 만드는 동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셉 역시 미아를 거침으로써 돌고 돌아 결국 꿈을 이룬다. 그들은 서로를 완성시켰으며, 그렇게 변한 결과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 서로를 '언제나 사랑하는' 방법이 되었다. 보편적인 연애가 남기는 후회와 미련의 감각 때문만이 아닌, 내가 경험한 그 무엇도 상실되지 않고 나를 완성하는 판타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사람들은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가짜 같으면서도 사랑스러운 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상의 파리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함께 과거의 다른 가능성들을 춤추는 장면은 미넬리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꿈 속의 춤들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파리는 현실에서는 없었던 사랑의 성취가 일어나는 이국의 공간이자 꿈의 무대가 된다. 그러나 [라라랜드]야말로 거대한 꿈이다. 어떤 사랑도 부질없이 실패하지 않는 곳, 모든 몸짓이 춤이 되고 모든 말이 노래가 되어 영화관을 떠난 이후에도 관객 곁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곳, 덧없이 소모되는 눈물도 영원한 상실도 존재하지 않는 뮤지컬의 무대 위에 [라라랜드]는 있다.
P.S. 그러나 여전히, 내게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