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의 [인히어런트 바이스]
하지만 제정신이란 게 뭐지? 특히나 닉슨이 정권을 잡은 암울한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제정신이라니? 우리 모두 이제 생존 여행에 휘말려들었다. 60년대를 활활 불태웠던 각성제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감각을 자극하는 여행은 이제 한물갔다(...)영원한 불구자들, 실패한 탐구자들.
헌터 S. 톰슨,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 239쪽
토머스 핀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기본적으로 하드보일드 탐정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1970년의 로스엔젤레스에서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더러운 옷에 몸을 꿴 채 그날그날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립탐정 닥 스포텔로(와킨 피닉스)에게 금발 미인인 옛 여자친구 샤스타(캐서린 워터스턴)가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그 뒤 닥은 거대한 갱단 조직과 부패한 공권력이 얽혀 있는 온갖 일에 휘말리게 되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건을 완결짓는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가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금세 빠져나가고 마는 호화로운 캐스팅의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고유명사 덕에 이 두 시간 반에 이르는 영화를 보는 관객은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에 절로 어려움을 겪는다. 관객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인물들도 그렇겠지만 주인공인 탐정조차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러한 혼란스러움 또한 해밋이나 챈들러가 확립한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관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비열한 거리를 통과해 걸어가면서 그 비열함에 물들지 않는' 필립 말로의 환영은 온갖 타락과 범죄의 틈바구니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작은 정의나마 실현할 줄 아는 탐정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도 드리워져 있다. 특히 시종일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딱히 신뢰감을 주지 않는 대사를 웅얼대는 닥의 캐릭터는 알트만의 [기나긴 이별]에서 엘리엇 굴드가 연기한, 원작과는 다소 다른 이미지의 필립 말로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탐정이 제정신이 아닌 마약 중독자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약빨'을 숨길 수 없는 매력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냈던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이 약 냄새는 익숙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닥은 늘 마리화나를 말아 피고 있으며 시시때때로 환영을 본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는 어떤 액션을 하는 닥이 등장한다.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광경 안에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닥이 보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닥이 모르는 것들, 닥이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영원히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보고 있는 것조차 약에 취한 그의 환영인지 진실인지를 명확히 분간할 수 없게 된다. 모르핀 중독자인 셜록 홈즈도 사건을 쫒을 때만은 멀쩡한 정신으로 뛰어다녔건만, 닥은 이야기 바깥의 관찰자들에게 전혀 그런 배려를 해 주지 않는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이야기의 안팎을 오가며 핀천의 원작에서 따온 문학적인 대사들을 읊는 내레이터인 소틸레주(조애나 뉴섬)의 존재이다. 소틸레주는 전지적 관점의 화자인 동시에 닥의 환상 속에 존재할 뿐인 인물인 것 같기도 하며, 닥이 경험하는 현실을 명징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시시때때로 점성술을 인용하여 괴이쩍은 예측을 일삼으면서 관객을 현혹하기도 한다. 닥의 친구로 보이는 그녀는 그 불어 이름(Sortilège)이 의미하는 바 그대로 연속적인 숏 사이에서 태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어떤 마술적 존재인 것 같다. 관객은 이야기의 방향 잡기에 도움도 안될 뿐 아니라 별로 신뢰도 가지 않는 이 한 쌍의 화자만을 의지하여 이 기나긴 영화 속의 무수한 사건들을 통과해 가야 하는 것이다. 닥이 사건을 해결해 보겠답시고 이리저리 얼굴을 들이밀 때마다 누군가에게 '약쟁이'니 '히피'니 하는 비아냥을 들으며 온갖 모멸을 겪을 동안 말이다.
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히피'라는 멸칭이 곧 그라는 인물과 그의 혼란스런 정신상태를 설명해준다.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배경은 포스트 히피 시대이며, 닥은 과거의 시대에 갇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온갖 마약과 총천연색 꿈이 대기 중에서 춤을 추었던 1960년대가 막을 내리자 그 시대의 산물이었던 닥과 샤스타의 연애도 끝나 버린다. 닥과 바닷가에서 자라난 유년기를 공유하고 있는 빅풋은 비정한 경찰이 되고, 샤스타는 거물 개발업자의 정부가 되어 노리개처럼 다뤄진다. 닥이 샤스타의 의뢰를 받고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헤쳐 가는 현재의 세계는 닉슨 대통령과 그 끄나풀인 캘리포니아 자경단, FBI, 법무부, 레이건 주지사와 건축개발업자들, 베트남 전쟁 지지자들, 합법적이고 이성을 가진 협잡꾼들의 소유이다. 더 이상 약에 취해 사소한 위법을 저지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히피들의 세계관은 유효하지 않다. 이제 악당들은 법을 우회하며 더욱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자유를 의미했던 마약은 70년대에는 망각을 위한 몸부림 혹은 중독자들을 착취하고 통제하기 위한 악당들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과 불교의 만자문이 혼동되는 세계, 무엇이 깨달음이고 무엇이 폭력인지조차 분명치 않은 세계를 닥 스포텔로는 통과하여 걸어나간다. 이 타락한 세계 속에서 겨우 닥이 구해낼 수 있는 것은 다른 한 불쌍한 약쟁이의 인생 뿐이다. 그를 떠났던 가장 아름다운 시대, 유년기의 친구(빅풋은 닥의 또다른 상처받은 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옛 기억은 명확하게 서로의 것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옛 여자친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의 모습은 계속해서 조니 그린우드의 회고적이고 아름다운 현악 선율이나 과거를 여행하는 내용의 가사를 가진 닐 영의 감성적인 노래를 얹은 환영 또는 기억으로만 돌아올 뿐이다.
소틸레주의 내레이션에서처럼, 약쟁이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현실을 부정한다. 이 실패한 탐정놀이와 보잘것없는 영웅담은 닥의 환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런 환상에서조차 닥은 스스로를 구해내지는 못한다.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닥은 더러운 집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다. 이때 빅풋이 그를 방문하고, 환영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광경 속에서 닥과 빅풋은 서로에게 사과한다. 빅풋이 마리화나 잎을 씹기 시작할 때 닥은 울기 시작한다. 파트너를 잃은 경찰과 연인을 잃은 사립 탐정, 형제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패배자들은 오랜 앙금을 씻고 깊은 유감을 공유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남은 것은 들이마실 마리화나 한 접시 뿐이다. 닥은 그 어떤 복수와 모험으로도 복구할 수 없는 과거를, 환각성 식물만이 위안으로 남은 그들의 무기력한 세계를 비로소 맨정신으로 슬퍼할 줄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닥의 몰락한 꿈을 상징하는 샤스타, 혹은 그녀의 환영이 다시 나타난다. 두 사람은 그늘 속에서 함께 과거를 회고하고 소틸레주를 의심한다. 그러면서 샤스타는 물에 가라앉아 있는 기분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이전에도 환영 같은 형태로 닥에게 나타나 자신에게는 보험을 들 수 없는 '고유 하자(inherent vice)'가 있어서 배를 타지 못했다고 말했던 샤스타는 실제로는 밀수선에 탄 것일까? 아니면 바다에 영영 빠져 버린 것일까? 샤스타와 닥처럼 70년대에 안착하는 데에 실패한 히피 시대의 산물들은 헌터 S. 톰슨의 표현처럼 영원한 불구자들이자 실패한 탐구자들로서 별 수 없이 자신의 결함으로 무너져갈 위험을, 고유한 하자를 지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들은 그저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을 명확히 확인할 뿐이다. 샤스타가 계속 빛이 들지 않는 곳에 머무르는 동안 닥의 눈가에는 빛이 닿았다가 사라지고, 이내 다시 한 번 빛이 그의 눈을 비춘다. 그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나 아직 빛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지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