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가장 큰 카탈로그
다큐멘터리 '306 할리우드'
'할리우드 306번가'
엘란과 조나단이 어렸을 때부터 30년간 매주 일요일에 갔던 뉴저지에 있는 할머니 집 주소이다.
특별할 건 없지만 도시에서 온 아이들에게 할머니 집은 우주와 같았다고 했다.
나에겐 그저 뒷마당에 남매가 타고 놀던 그네에 햇빛이 비치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남매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83세에서 93세까지 10년 동안 할머니를 인터뷰하며 사랑하는 할머니를 기록에 남겼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은 할머니의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집을 내놓지만..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급하게 물건들을 정리하며 힘들게 보내던 중
영혼은 그가 살아있을 때 가장 편한 공간이었던 집에서 11개월 동안 머문다는 장례지도사의 얘기를 듣고
팔려고 내놓았던 집을 정리하는데 11개월이란 시간을 갖기로 한다.
그 시간 동안 고고학자 패션 관리 전문가, 물리학자, 기록 보관인, 도서관장의 도움을 받으며 각각의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할머니 집을 바라보게 되고 남매가 고고학자가 되어 할머니 집을 발굴하면서 집은 곧 우주며 온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섯 대의 진공청소기, 깔끔히 다려져 정리되어 있는 천, 동전이 가득 담겨있던 여러 개의 밴드 상자, 인터뷰 때마 신고 있던 낡은 운동화, 그릇, 스타킹 등등 남매가 발굴한 보잘것없는 물건들. 유품들은 재밌는 색색깔의 칫솔 카탈로그, 패션 디자이너였던 할머니가 만든 낡은 드레스 패션쇼, 분홍색으로 분류된 것만으로도 이뻐 보이는 카탈로그 등으로 의미 있게 재탄생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할머니를 추억하고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이 집은 이젠 더 이상 집이 아니라 이야깃거리일 뿐이었다.
모든 물건엔 과거 흔적이 담겨있고
모든 물건에 의미가 있다.
남매가 발굴하는 물건들이 분류되어 기발하게 카탈로그화 되고 할머니에겐 어떤 의미들의 물건들이었을까 생각하는 동안 내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뭐가 있을까 떠올리게 된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남겨진 사람의 물건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된다.
평생 같은 전화번호부를 쓰시고 죽은 사람은 줄을 그어놓았던 전화번호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고 혼자 남겨졌지만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할머니 인생을 돌이켜보면 잘 해낸 것 같다고 기쁘다고 말씀하시던 장면은 가장 큰 여운을 남겼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남겨놓은 물건들이 그런 이야깃거리가 되어줄까?
식탁이든 서랍장 위든 많은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지저분하다며 좀 부끄러운 듯이 웃던 할머니.
마치 수집상이 된 것 같다던 할머니를 보는데 마치 결혼하기 전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면서 짐을 정리할 때 많은 스토리가 담긴 물건일수록 미련이 남아 그것들을 버리는 게 정말 힘이 들었다.
많이 버렸다고는 하지만 신혼집에 들고 나오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물건들이 여전히 부모님 집에 있다.
본가에 있는 내 물건들이 나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내가 죽고 나서도 그 물건들이 내 카탈로그에 실리길 바라는가? 우습거나 또는 창피스럽지 않은가?
남겨진 사람들에게야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놓은 모든 물건들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맘에 들고 나에게 의미가 있는 멋진 카탈로그를 만들며 살아가야겠다 생각한다.
직접 코를 대고 맡았을 때 강렬하게 좋은 향이 아니라 처음 맡았을 때보다 잔향이 오래가는 영화.
한동안 내 일상은 그 잔향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