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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Feb 11. 2020

그렇게 힘든 시간도 결국 흘러갔네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 2018년 그 해 여름

대부분의 둘째를 가진 임신부들과는 달리 나는 만삭이 되기 전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계획해서 가진 둘째는 아니었지만 하나만 낳을 생각은 없었고 서로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키울 때 몰아서 같이 키워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첫째 모유 수유를 끊자마자 힘들이지 않고 들어선 둘째가 고마웠다. 첫째는 애 좀 먹었기에..

그런데 아이들을 집에서 최대한 오래 돌보고 싶었던 내 바람은 비현실적이고도 내 능력 밖의 일처럼 느껴졌다.

어린이집은 건너뛰고 유치원부터 보내고 싶었는데... 그나마 최대한 늦춘다고 늦춘 게 두 돌 지나고였다.

첫째가 동생이 생긴 변화에 익숙해지고 적응기간을 잘 갖은 후 말이다.

둘째라 더 일찍부터 배가 불러왔고 그 무거운 몸으로 거기다 임신 중기부터 출산할 때까지 속이 쓰렸던 입덧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첫째를 위해 마땅히 육아에 나를 혹사시켰다.

출산 후의 전쟁 같은 시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채.


정말 첫째 때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보다 나아서가 훨씬 좋았다. 태어나면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좋고 기거나 걷기 시작하면 또 누워 있기만 할 때가 가장 좋단 말이 무색할 만큼 나는 그랬다.

내 아가라는 실체가 있고 그래서 볼 수 있으니 덜 힘들게 느껴지고 기꺼이 희생하게 됐다.

그래서 둘째도 낳으면 더 상황이 좋아질 줄 아니 악화될 줄은 전혀 몰랐다.

책도 많이 보고 주변의 간접 경험으로 인해 나는 둘째보다 첫째에게 더 신경 쓰고 동생을 미워하게 할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자신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동생을 임신해서 자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버렸다고 생각하는 출발이 아니라 엄마와 단둘만의 시간을 최대한 길게 가지면서 사랑을 듬뿍 받는 내가 우선이구나 느껴서 무던하게 동생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나 긴 시간이지 둘째 출산하러 가는 날까지도 함께 있었지만 첫째에게는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던 거다. 둘을 델고 다니면서 제일 많이 들은 "첫째도 애긴데 동생을 봤네" "얘도 애긴데 얘는 더 어리네" 같은 말처럼 엄마와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은 첫째도 고작 21개월의 두 돌도 안된 말 그대로 '애기'였던 거다.

(차라리 애기 둘 다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 몸만 좀 더 힘든 한 살 터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첫째가 딱 자아가 생기면서 주장이 강해지는 두 살 터울은 나처럼 지옥을 경험하는 수도 있다.)





뜨거운 땡볕에도 우리는 놀이터로 산책로로 무조건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육아는 예측할 수 없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반드시 나오는 건 아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난 게 아닌데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아는 게 당연한 거고 무엇보다 어느 부모라고 자식 잘 키우려고 안 할까.

다 잘해보려 한 건데 방식이 서툴러서 혹은 책이나 주변의 조언도 내 상황에는 맞지 않아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긴다는 거다.

내 경우에도 첫째는 내가 노력한 만큼 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불과 몇 달 전부터 조금씩 받아들이는 거 같다) 유독 샘도 많고 자기로 향한 집중이 분산되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집안에서 우리끼리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몸이 덜 풀렸어도 더위와 싸우는 편이 훨씬 나았다.

결국 난 첫째가 더 비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둘째

를 향한 애정표현은 물론 아무리 울어도 수유할 때 빼고는 잘 안아주질 못했고 그렇게 둘째 울음소리는 늘 들려 나오는 시끄러운 BGM 같았다.

그 배경음악 속에서 첫째가 이유 모를 떼를 한 번씩 쓰고 잘못을 되풀이해도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화내고 미안해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정말 사력을 다해 노력했다.

우선 나도 첫째도 좋은 기분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는데 일단 나부터 첫째가 협조적이지 않고 자기주장을 할 때 '뭐가 불만이지? 뭐가 필요해서 이러지?'가 아니라 '얘 또 말 안 듣네' 싶으면 바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쉽지 않았고 첫째도 내가 차분히 설명하고 타이를 때 조금이라도 안 좋은 반응이 느껴진다 싶으면 그때는 더 고집을 부리다가 떼를 쓰기도 했다.

그때 아이도 그러면 안된다는 걸 몰라서라기보다 자기도 원하는 게 생기고 일단 굽히기 싫어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이의 주장을 꺾으려고만 하지 말고 타협점을 찾아 기분 좋게 물어본다는 게 결코 하루 이틀 훈련한다고 되는 기술이 아니었다.






나는 집 안 곳곳 내가 수시로 보는 곳에 항상 명심하고 상기할 것들을 적은 메모들을 붙여놓았었다.

그리고 후회되는 일이 생긴 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반성한 것이 꼭 정리가 되어야만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다. 내일은 꼭 이렇게 해보자'라고 나 스스로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 날엔 전날의 상태가 연장된 채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간 내 피눈물의 흔적 - 집 안 곳곳에 붙여 놓았던 메모들이 어느 순간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나와 같은 시기와 상황의 육아책들을 찾아 읽고 또 실전에 부딪치고 또 찾아 읽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도 제일 힘들었던 건 정말 상황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한 답을 모르겠을 때였다. 아니 책에선 열심히 설명했을 텐데 내 경우에 적용을 잘 못 시켰다. 자연스럽게 대처가 되는 지금이야 그게 무슨 뜻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였는지 또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건지 아는 거지 그때는 읽어도 읽어도 그리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베이비 위스퍼 2'와 '내 아이를 살리는 비폭력대화'는 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된 육아책이다.


모든 육아책에서 제일 기본으로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우선 아이의 기분부터 공감해주는 거, 왜 그랬는지 아이의 감정을 헤아려주려 주는 거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아 역시 우리 엄마는 내가 왜 이러는지를 이해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심리적으로 안심하며 바로 한풀 꺾인다.

하나를 키울 땐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신생아와 함께 둘을 보게 되니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져서 잘 기다려주지도 못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는 죄책감에 휩싸여 수시로 우울해졌다.

특히나 모유 수유를 방해하는 건 기본이고 그 울보를 힘들게 힘들게 재웠는데 일부러 깨우려고 한다거나 둘째가 심하게 울면 엄마가 둘째에게 갈까 봐 갑자기 칭얼거리거나 떼쓸 때 그리고 한 번씩 둘째를 거칠게 대해서 울릴 때면 내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곤 했다.

그렇게 무수히 반복되던 상황 속에서 터득한 건 '안돼, 하지 마'를 반복하며 본의 아니게 기싸움을 할게 아니라 그러면 안된다고 말은 해주고 일단 내가 그 자리를 뜨던가 둘째를 들어 옮기는 것부터 한다던가 해서 얼른 상황을 종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해도 제일 어려운 건 내가 이미 상해버린 기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평소와 다른 표정이라던가 분위기, 조금이라도 짜증 섞인 말투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엇나갈 수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동안 무관심하게 아이를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을 하면서 빨리 생각을 전환하려 했다.






내가 힘들 땐 '이 정도면 첫째도 안정이 됐으니 지금이 어린이집을 보내면 될 때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기 좀 전부터 둘째도 안 때리고 성질도 안 부리고 그래서 한 번씩 그냥 델고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이랬다 저랬다 하다가 계획하던 대로 첫째가 딱 두 돌 되는 달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리고 엄마와 같이 가는 적응 기간이 끝나고 며칠 후 원장 선생님께 정말 기쁜 얘기를 들었다. 

"첫째는 엄마와 애착이 정말 잘 된 것 같아요!"

정말 벅찬 순간이었고 그동안의 내 노고를 한 번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힘들어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100일의 기적도 찾아왔다. 둘째는 첫째와 엄마에게 적응을 한 건지 아님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포기를 한 건지 시도 때도 없이 울던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울어대도 울지 않아도 둘째에겐 실로 미안한 게 늘 첫째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다 보면 둘째에겐 눈길 한번 줄 틈도 없었다는 거다.

거기다 엄마는 늘 첫째 전용이니 둘째는 일하고 돌아온 피곤한 아빠가 도맡게 되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항상 애정이 부족했을 둘째를 생각하니 맘이 너무 아프다. 첫째는 또 첫째대로 혼자 자랐으면 모든 것을 독점했을 텐데 하루아침에 많을 것을 뺏기고 특히 하나라면 계속 주어졌을 기회들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크다.

그리고 힘든 만큼 또 수월하게 지나간 것들도 있어서 엄마를 위해 까탈스럽지 않게 커주고 있는 기특한 두 녀석 모두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돌이켜보니 둘 다 단유 할 때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끊었던 것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샤워기로 편하게 씻기고 서기 시작하고부터는 안아서 씻기지 않아도 됐던 거, 대변을 봤을 때도 쪼그려 앉아서 샤워기로 씻겨버리면 그만이었던 거, 거기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난 와중에도 두 돌도 안되어 쉽게 기저귀를 떼었던 거 등등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서 아직도 재우기 힘든 것 빼고는 편하게 키운 것들도 꽤 많구나 싶다.





2018.06.10.23:55

제목 : 그냥 별 감정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랄까.

피할 수 없고 어떻게든 나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가 봐.

혼자서 첫째 둘째와 보내는 소감은 정말 대단해 대단히 빡세 ㅋㅋㅋㅋㅋㅋ

정말 다 같이 낮잠 자는 시간 빼고는 1분 1초도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거.

그 와중에 요령도 생겼고 죽으란 법은 없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계속 둘을 번갈아 가며 뭔가를 하고 있어.

때론 둘을 같이 케어하고 예를 들면 수유하면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건 일도 아냐.

첫째가 골만 안 부린다면..! 생각으로 정말 다 맞춰주는 내가 어디서 힘이 나와 그렇게 하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야.

첫째 떼 한번 쓰고 나면 첫째도 나도 원래의 기분으로 돌아가기 힘드니깐.

계속 기분 좋게 말 걸고 부정적인 말 안 하려 노력하고

한마디로 비위 맞추는 게 가장 힘들다.

한번 안 좋은 상황이 되면 그날 하루는 첫째도 계속 청개구리 되고 나도 계속 혼내게 되거든.

암튼 그 와중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좋다.

앞으로 육아에 있어 지금보다 더 힘든 시기는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힘이 돼.

그리고 첫째 또래랑 어울리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시기가 언제가 됐든 안정되고 말만 좀 트면 어린이집 보내야겠다 생각하는데

하나만 돌보는 건 일도 아닐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문센이며 뭐하며 다닐지 꿈꾸고

그러다 보면 둘째도 금방 커서 자유부인되는 상상 하며 즐거워하고.

좀 내가 덜떨어졌잖니 또 그때 되면 힘든 점이 생기겠지만

나에겐 지금 당장 처한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버릇은 버텨나가는데 큰 힘이 되거든.

친구한테 둘째 낳으면서 일단 낳으면 반은 한 거라 말했던 나니까 더 말함 뭐하겠어 ㅋㅋㅋㅋ

다들 키우는 게 문제라 하고 맨날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들 말하는데 말이야.

근데 그렇게 생각해 버릇하는 게 준비 좀 하게 만들지언정 나한텐 이게 맞는다.

더 미리부터 사서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거같이 느껴져. 내 성향에는 또 그렇게 돼버리고..

암튼 또 최대한 몸을 아끼며 애들 돌보는 한주를 보내야겠다!

모두 건강하자:)


스무 살 때부터 18년째 제일 친한 중학교 때 친구들과 매주 근황을 올리는 비공개 카페에 썼던 글이다.

해가 바뀌어 그새 재작년의 일기가 되었다니...

그 당시 제일 힘든 시기가 지나고 있다는 희망적인 믿음은 어느덧 현실이 되었다.

정말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랑 단둘이 있는 시간은 하나도 힘들지 않고

첫째 때는 몸이 무거워져 길게 다니지 못했던 문화센터를 둘째와는 원 없이 다녔으며

무엇보다 이제 3월엔 다섯 살 첫째는 유치원을 그리고 세 살 둘째는 어린이집을 간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던 자유부인이 되는 거다.

들떠서 나도 모르게 한 번씩 실실 웃음이 나오고 무슨 운동을 하고 어떤 취미생활을 해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늘 밝은 표정으로 디데이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데 줄곧 나의 상태는 그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육아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그동안의 시간처럼 여유가 생기더라도 허비만 하며 사는 건 아닌지 시작되기도 전에 조급 해지는 내가 싫고 답답한 맘에 이젠 되려 그 시간이 좀 늦춰지길 바라기도 한다.

자기만 온전히 바라봐주면 그렇게 순딩일 수 없는 둘째의 어린이집 입소가 이미 확정되어 있지만 않다면 어린이집을 좀 늦게 보내고 싶은 생각도 까딱하면 그게 구실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무기력하게 그 대단한 3월을 맞을 수 없어서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변화를 시작했다.

취직을 했다. 브런치 작가로!

계속 포기하며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고 내가 그 변화에 한걸음을 내디뎠다.

빨리 가려하지 않고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의지가 꿈틀댄다.   

그리고.

2018년 그해 여름처럼 확신한다.

점점 덜 힘들어지고 있는 거다! 또 더 나아지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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