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ar Mar 10. 2020

디자이너는 마법사가 아니에요

브랜드 디자이너의 우당탕탕 실전기

“어떤 일 하세요?”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 하고 있어요.”
“네? 브랜드 디자인이요? 브랜드 디자인이 뭐에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매번 브랜드 디자인이 어떤 일 인지 설명한다. 최대한 한번에 이해시키기 위해 내가 하는 여러가지 업무를 열심히 말한다. 
“브랜드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로고디자인, 제품의 기능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패키지디자인, SNS 컨텐츠 디자인, 내부 외부 포스터 등 브랜드를 알리는 시각적인매체를 다 디자인한다고 보면 돼요.”
“아~ 로고 디자인 하시는구나”
설명의 순서와 상관없이 듣는 사람의 90% 이상은 모두 ‘브랜드디자이너=로고 만들기’ 결론을 내린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브랜드 디자인=로고’ 개념이면
 동네에 있는 간판 제작자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랜드 가치, 내부 브랜딩 같은 단어를 사용해 열심히 어필한다. 저 그냥 단순히 로고만 만드는거 아니라구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매번 ‘아~ 로고 디자인’으로 결론이 났고 이제 나도 반 포기 상태가 되었다.
“쉽게 생각하시면 로고 만드는 일이에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주요 클라이언트는 카페, 음식점, 술집 등의 상업시설을 내려고 하는 자영업자들이다. 밖을 돌아다녀보면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SNS에서 유명한 곳이라 혹해서 가봤는데 ‘별 거 없내 뭐’ 생각하거나 반대로 맛있는 음식과 특이한 상품을 파는 진짜 좋은 곳인데 홍보가 잘 되지 않아 사람들이 없는. 이 회사에 들어온다면 이런 일 들을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간과 상품(서비스)가 어울리는 브랜딩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입 사 하 기 전 에 는


브랜딩을 위해 클라이언트 미팅을 할 때면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가장 많이 느낀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 되는 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소비자가 브랜드를 봤을 때 느꼈으면 하는 점 등 여러 질문을 물어보면 대부분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골목식당에나오는 백종원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 그럼 지금 저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달라는 거에요?


백종원 아저씨는 요식업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지만 저는 디자인도 아직 초짜에 디자인 외엔 아무것도 몰라요...



가게 오픈일은 정해졌고 짧은 시간안에 그럴듯한 완성물이 나와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더 많이 들어간 결과물이 나오고 그럴 때 마다 회의감이 든다. 반대로 이건 진짜 아닌데 싶었지만 완고한 클라이언트의 고집을 꺾지 못해 내 생각과 다른 방향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이쯤 되면 그냥 그들의 손 발이 되어 내가 표현만 해주는 것. 내가 하고 싶었던 브랜드 디자이너가 이런 일이 맞았었나?

최근 몇 년간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스타트업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성공을 이룬 기업들의 공통점은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것. (전부는 아니지만 10개의 기업 중 7정도는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 등 특정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브랜딩에 신경을썼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브랜딩’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다. 

브랜딩이 잘 된 기업 (오로지 내 생각 100%)


문제는 관심만 많아졌다는 것이다. 길진 않지만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일한 프로젝트들을 다시 생각해 보면 브랜딩은 하나만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짜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몇 가지만 바꾸면 금방 브랜딩이 완성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애플처럼 혁신적인 이미지를 우리 회사도 갖길 바라며 '애플처럼 디자인 해주세요'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클라이언트의 요청대로 심플한 느낌의 심볼타입으로 로고를 디자인하고 패키지도 비슷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제품이 혁신적이지 않다면 브랜딩에 성공한 사례가 아닌 애플 스타일의 아류 브랜드로 남겨질 것이다. 
결국 업의 본질이 탄탄이 마련된 상태에서 브랜딩이 진행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나에게 일이 떠밀려오니 디자이너가 아니라 거짓말을 잘 하는 마술사가 된 기분이다. 많은 시간과 돈이 브랜딩에 투입되어야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모든 기업이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스트레스와 회의감이 드는 날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하는 건 하고 싶은 일이니까.
‘영화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영화를 만들고 그렇지 못한 놈들은 항상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핑계만 댄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말을 되새기며 불평은 최대한 가슴속에 숨기고 오늘도 마술을 부리러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