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주홍글씨를 달기 직전, 헤스터 프린의 말.
[뭘 기다리죠? 어서 달아요!
이건 내가 아닌 당신들의 수치의 상징일 뿐이에요.]
[A]
Adultery, 간통. 혼인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행위를 하는 행위.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인, 헤스턴 프린은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딸을 안고 슬프고 두렵지만 그런 말을 외치며 기꺼이 그 글자를 자신의 품에 받아들인다.
'당신들의 수치의 상징', 17세기 엄격한 청교도 사회 마을의 구조 안에서, 기꺼이 스스로가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한 여성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홀로 기다리며 지친 나날을 보내다가 만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인 딤스데일 목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입을 다물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딸을 더할 나위 없이 귀한 펄(Pearl, 진주)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손가락질한다고 한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독립적인 삶과 가난한 이들 돕는 삶을 선택한다.
우습게도 그토록 그녀를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이들은, 7년의 시간이 지나서 그녀의 가슴에 달린 글씨의 의미조차 자신들의 생각대로 변형해서 생각하게 된다.
[A] , Able, 유능한.
그녀의 바느질 솜씨도, 그녀가 베푸는 마음도 결국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니까. 말은 신의 뜻을 따른다고 하는 엄격한 청교도 사회의 인간들이지만, 결국 자신들의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대신, 그녀를 그런 식으로 타자화할 뿐이다.
펄의 진짜 아버지이자, 이 마을에서 숭배하는 수준으로 존경받는 딤스데일 목사 또한 결국 하나의 대상화일 뿐이다. 헤스턴의 가슴에 그 글자가 달린 7년의 시간 동안 목사 스스로도 그 위태로운 자리를 위선으로 살아간다는 사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 안의 주홍글자의 낙인을 품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어느 누구보다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알아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그런 삶이 아니라서.
헤스턴의 본래 남편인 칠링워스 역시 결국 복수심으로 딤스데일 목사를 은밀하고 집요하게 괴롭히기를 선택한다. 헤스턴의 남편임이 드러난다면 수치스러우니, 진짜 자기 자신은 드러내지도 못한 채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야 유능한 의사이며 상당히 경건하다.
그러나 7년간 복수에 집착하는 삶만을 살던 그는, 모든 죄를 고백하고 생을 마감한 딤스데일로 인해, 모든 삶의 목표를 잃고 헤스턴과 펄에게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물론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동정의 여지는 있다. 타지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 보니, 자신의 아내가 모르는 남자의 사생아를 낳았으니 청천벽력 같았겠지.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모든 진짜 삶을 내던지고, 보이는 가짜와 내면의 어두운 집착에 머물러 스스로를 가둘 만큼 가치가 있진 않았다는 것을, 그 마지막 순간 허망하게 깨달은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건 구조가 낳은 비물리적 폭력이다. 지난날, 나에게도 누군가가, 혹은 어떤 구조가, ‘이건 너의 죄야’라며 씌우고 싶어 했던 글자가 있었기에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글자를 떼어내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글자를 내 안에서 재구성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눈을 가리더라도 오히려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눈 뜬 자들조차도 보지 못하는, 혹은 보더라도 외면하는 진실은 허상과 가짜로 뒤덮인 현혹에 가끔 밀리기도 한다. 그러나 빛 앞에선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진짜'가 무엇인지.
그것이 헤스턴이 구조의 이방인이 되었을지언정, 사생아로 불리는 자신의 딸을 펄 (Pearl, 진주)로 이름 지은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 역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서 달아요. 그건 내가 아닌, 당신들의 수치의 상징일 뿐이에요."
지난날 말하지 않는 건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이제는 나를 정의하기 위해 말하는 거니까.
[A], Aware.
나를 의식하는 자.
당신들이 그토록 지워내고 싶었던 빛.
이제부턴 이 글자를 똑바로 마주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