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with Audio
알베르 카뮈, <이방인> 도입부.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마 어제였으리라.]
개인적으로 카뮈는, 내가 선호하지 않는 작가들 중 하나다. 나는 실존주의(카뮈는 아니라고 부정했다만)나 부조리 작품을 선호하지 않으니까. 읽고 있다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너무 큰걸 느껴서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거든.
현대에선 니체나 카프카, 카뮈, 사르트르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 진심으로 그 작가들의 인간 실존이나 사회에 대한 부조리의 성찰을 하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이방인>의 그 유명한 첫 문장도 염세적인 척, 드라마 속 소시오패스가 된 듯, 멋에 물들어 읊조리는 이들 투성이다. 하긴, 일반적인 윤리 의식을 가진 이라면 카뮈의 철학이나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얼마 전 관련 공연을 봤을 때도, 사람은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만 카뮈의 사념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를 보며 참 아이러니컬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는 내 모습이 오히려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부조리를 그대로 와닿았던 건지도.
그의 부조리의 정의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무너진 것에서 오는 상태'이다.
연관되어 이방인의 주인공 이름 '뫼르소(Meursault)'는 '살인(meurtre)'과 '태양(soleil)'을 의미하는 단어의 앞부분을 의미하거든. 태양빛이 눈부셔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그 진실을, 사람들은 모든 관련 없는 감수성과 연관시켜 그를 극악무도하게 잔인무도한 계획 살인범이라고 정의 내린다.
나 역시, 태양열을 가진 내 이름을 한 채 그저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았을 뿐인데, 그 순간 무대 위의 배우들과 무대를 이해하지 못했고, 구성과 텍스트가 주는 얕은 이해도에 피로함을 느꼈을 뿐인데,
나의 이 건조함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잔인한 총성이 되어버린다.
부조리하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이나 신념 같은 건 진작 깨졌었거든. 이게 가면 없는 진짜 내 모습인 걸. 뫼르소 역시, 도입부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서브텍스트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이야."
삶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뫼르소와 나의 차이가 있다면,
그는 신을 믿지 않지만,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유를 찾고, 나는 삶의 의미를 뛰어넘어 나를 억압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깨우침과 평화를 얻고자 맞서는 고행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