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 줄리엣의 대사.
[오, 로미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당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당신의 이름을 버리세요.
만일 그게 싫으시다면 제 사랑이 되겠다고 서약만 해주세요.
그럼 제가 앞으로 캐퓰렛이란 이름을 지니지 않을게요.]
읽는 동안 배우 이지아가 <힐링캠프>에서 했던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 살만 더 많았어도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14살의 줄리엣과 16살의 로미오. 둘은 5일 사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하룻밤을 보냈으며 결혼하고 동반 자살까지 하였지. 원수지간의 가문의 두 아이는, 결국 주변의 간섭으로 인해 불타오르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당대 최고의 문학가가 맞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시대상이 그대로 녹아져 있으며, 그들의 사랑은 숭고함이 맞으리라. 결국 두 아이의 희생과도 같은 죽음으로서 베로나 공국의 평화가 찾아왔으니까.
문장 구성과 어휘들도 구석구석 아름답다. 물결치는 말들의 짜임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성숙하고 빛나는 찬가를 비단을 펼치듯 내어놓는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섣부른 순간들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서로를 미워하고 욕심이 많았던 두 가문의 죄가 크지. 그러하니 상대를 갈망하게 된 서투른 두 아이는 그 사랑을 느낀 순간, 주체가 안 됐을 것이다.
이번에 <로미오와 줄리엣> 번외작을 보면서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지도. 제약은 사랑은 달아오르게 하니,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짓을 벌여야겠다고 판단한 거겠지. 내일도 없이 말이야. 그리고 그 값으로서 목숨을 내놓는 안타까운 선택으로 몰리고 나서야, 내가 누군지 정말 알았을까.
아니, 몰랐어. 절대.
불쌍하기도 하지.
그래서 다정한 봄의 아이 줄리엣의 정해진 죽음이 시작되는 그 희망의 씨앗을 내 목소리에 담아냈다. 모든 게 아쉽고, 서툴지만 희망을 그리는 아이.
이 작품은 희극이자 비극이니까. 모든 원흉이 비극으로서 해소가 되는 희극. 안타까워도 어떻게 하겠는가, 신이, 작가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끝을 정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