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with Audio
P. 15, 탐욕스러운 구두쇠 스크루지에 대한 이야기
[그는 언제나 냉기를 몰고 다닌다. 삼복더위에도 사무실에 얼려 놓았고,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온도를 1도도 올리지 않았다. 바깥 날씨가 덥든지 춥든지 스크루지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아무리 더운 날씨도 그를 따뜻하게 할 수 없었고 또한 아무리 추운 날씨도 그를 떨게 하지 못했다. 지독한 소나기나 눈보라, 우박, 진눈깨비 같은 것들은 딱 한 가지에서만큼은 스크루지를 이길 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가끔씩은 후하게 '내려준다'는 것. 스크루지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스크루지 씨, 안녕하세요? 언제 한번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거지들조차도 그에게는 땡전 한 푼 구걸하지 않았으며 시간을 물어보는 아이들도 남자든 여자든 평생 단 한 번이라도 그에게 길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스크루지가 신경이나 썼을까? 이런 것이야말로 스크루지가 원하는 삶이었다. 복잡한 인생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동정심 따위는 저 멀리하는 것이 세상 물정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실속'이라고 여겼다. ]
왜 어떤 사람은 아주 오랜 잘못된 삶을 살다가도, 단 한 문장, 단 한 사건으로 무너질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인색한 속물 그 자체로 탐욕스럽게 살아온 스크루지는 어느 날의 크리스마스 직전의 새벽, 죽은 망령이 된 오랜 동업자 말리를 만난다. 그리고 온몸이 쇠사슬로 덮인 그 영혼은 스크루지에게 경고를 한다.
다가올 죽음의 순간, 너 또한 나처럼 고통받을 것이라고.
p.32, 망령 말리와 스크루지의 대화
["그건 내가 받고 있는 벌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네. 내가 오늘 밤 여기에 온 이유는 자네에게 나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서라네. 이건 내가 자네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기회와 희망이야. "
"자넨 언제나 좋은 친구였어. 고맙네."
"자네에게 세 유령이 찾아올 걸세."
스크루지의 얼굴빛이 유령만큼이나 어두워졌다.
"그게 자네가 말한 기회와 희망인가, 제이콥?"
"그렇다네. " ]
그리고, 그날 밤. 크리스마스의 세 유령이 찾아온다.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들.
사실 스크루지의 삶은 겉으로는 견고한 성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공허, 결핍,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의 지독한 탐욕이든, 자기기만이든, 권위든 — 사실은 텅 빈 자아를 붙잡는 버팀목이었을 뿐임을, 조금만 건드리면 완전히 균열이 파고들 준비가 되어있는 젠가 같은 삶임을, 그는 그 세 유령을 마주하면서 처절하게 느끼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 만남이 있기 전부터 알면서도 외면했던 건지도. 그는 자신이 세상 물정 좀 아는 '실속' 어린 사람이라 여겨왔으니까.
과거의 유령은 그의 과거를 보여주며, "네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라" 종용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채워줬던 동화책, 즐거웠던 옛 직장에서의 추억, 변해버린 자신과 멀어진 첫사랑의 순간.
그 안에서 그는 사랑, 따뜻함, 인간성을 잃은 자신을 마주하고 괴로워한다. 과거의 유령의 머리에서 나오는 빛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밝혀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스크루지는 그 빛을 모자로 덮으려 한다.
그러나 가려진 채로도 빛은 새어 나오고 있었고, 결국 아무리 과거를 숨기려 해도, 기억은 언젠가 우리를 비추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유령은 그의 주변인들의 현재를 보여주며, "네가 지금 외면하고 있는 것을 보라"라고 일침 한다.
스크루지는 이 유령을 따라다니며, 스크루지의 부하 직원인 밥 크래지트의 가난한 가족들이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의 크리스마스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지, 그의 하나뿐인 조카가 돈에 구애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얼마나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지, 동시에 무심한 부자들은 얼마나 무정한지를 함께 보게 된다.
가난하지만 살아있는 웃음과 연대, 동시에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는 시간의 덧없음을 지금 이 현재의 순간에서 거울처럼 보게 된다.
그리고 미래의 유령은 그 어떤 말 없이, 그저 그의 미래를 보여준다.
얼굴을 완전히 가린 유령의 말없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끝은, 스크루지가 죽은 뒤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만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무심히 그의 물건을 훔치고, 어떤 이는 빚이 탕감되어 기뻐하고, 장례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다. 무가치하게 잊히는 죽음, 그리고 '현재'에서 보게 된 밥의 어린 아들 팀의 죽음까지.
"네가 지금처럼 살면, 이렇게 끝날 텐데 괜찮겠느냐"라는 침묵 속에 담긴 질문이 두려움과 함께 스크루지의 가슴을 관통한다.
"이건 반드시 일어날 미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바꾸면 달라질 수도 있는 미래지요?"
스크루지의 이 말은 곧, 인간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 즉 선택의 자유, 그는 결국 말이 아니라, 자기 안의 두려움과 공허에 무너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것이 환영이었든, 실제였든 그는 '자기 자신'을 마주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삶에 누적된 균열이 그를 부쉈고, 죽음의 순간들을 직면했으며, 크리스마스라는 가장 따뜻해야 하는 시간의 임계점을 맞이했기에, 변화를 선택한다.
과거, 현재, 미래. 비단 스크루지뿐만 아니라 이 세 유령을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사랑, 따뜻함, 인간성, 나눔.
이 모든 것들을 바보 같고 손해라 여기며 자기만의 탐욕스러운 금고에 자기 자신을 가두곤 한다.
그러나 삶은 정확하다.
그리고 단순하다.
내가 무엇을 놓을 준비가 되었는지, 지금 무엇을 바꿀 용기가 있는지.
그 하나의 선택이 더 중요하고 큰 가치를 잃지 않고, 우리의 미래를 바꾸게 할 것이다.
유령들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 삶 앞에도 설 테니까.
여담
근데 정말… 적절한 경쟁심은 삶의 활력소가 될지언정, 탐욕은 나를 외롭고 초라하게 만들어. 죄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작용하고, 삶은 굉장히 정확하거든. (영끌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지.)
괜히 인간의 7대 죄악이 분노, 색욕, 식탐, 질투, 탐욕, 나태, 교만이겠어. 얘기하다 보니 <강철의 연금술사>나 다시 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