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 여인의 눈동자와 닮은 피부

<오셀로 Othello>

by 도한솔 I Solar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5막 2장. 오셀로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의 데스데모나.

[오셀로 : 내가 그렇게 아끼다가 네게 준 손수건을 넌 카시오에게 주었어.
데스데모나 : 아니에요, 제 생명과 영혼에 맹세코 아니에요. 그분을 불러와서 물어봐요.
오셀로 : 조심해, 이 사람아. 위증을 조심해, 넌 지금 죽기 직전이야.
데스데모나 : 예, 하나 죽진 않았어요.
오셀로 : 곧장 그럴 거야. 그러니까 네 죄를 솔직히 고백해, 그것을 조목조목 맹세하고 부인해도, 괴롭게 신음하는 내 강력한 신념을 말살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넌 죽을 거야.
데스데모나 : 그럼 주님은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셀로 : 동감이야.
데스데모나 : 그리고 당신도 자비를 베푸시길!
전 평생 당신께 죄지은 적 없어요,......
카시오를 절대 사랑 않았고 제가 해도 괜찮은 하늘이 모두에게 허락하는 사랑만 했어요. 절대로 그에게 정표 준 일 없어요.
오셀로 : 맹세코 그 자의 손에서 내 손수건을 보았어. 오, 위증의 여인아, 넌 돌 같은 심장으로 내가 뜻하는 일을 살인이라 부르게 하는구나, 나 그걸 희생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손수건을 보았어.
데스데모나 : 그럼 그가 주은 거지. 저는 결코 준 적 없어요. 이리로 불러와서 진실을 고백하라 그래요.
오셀로 : 그자가 고백했어.
데스데모나 : 뭐라고요?
오셀로 : 너를... 가졌다고.
데스데모나 : 어떻게? 부정하게요?
오셀로 : 그래.
데스데모나 : 그런 말 못 할 걸요.
오셀로 : 못하지. 입을 막았어, 정직한 이야고가 조치했어.
데스데모나 : 그 말을 무섭게 해석하면,..... 죽었단 말이에요?
오셀로 : 놈의 목숨이 머리털 숫자라도 나의 큰 복수심은 다 먹어치웠을 것이다.
데스데모나 : 아아, 그는 배신을, 난 파멸을 당했구나. ]




결국 이 작품을 다시 읽고 다루는 날이 왔구나 싶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불쾌했던 작품.

7년 전 스물네 살, 장면발표 때 데스데모나를 강제로 떠맡게 되면서 작품이 주는 폭력성에 치를 떨었던,
도무지가 이해가 되질 않아 교수한테 이야기했다가 하나의 갇힌 프레임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학생 상담실을 가보라는 발언을 들었던,
두 명의 현역 여자배우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편감을 느꼈던 내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어야 했던,
힘없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제야 다시 해체해 보고 이해해 보기로 한, <오셀로>.


오셀로 증후군 (Othello syndrome)

사전적 의미로 실제 증거 없이 배우자나 연인의 부정을 의심하고 집착하는 망상장애의 일종.
즉, 의처증 그리고 의부증이다.

증상으로는,
첫 번째, 배우자가 부정한 행동을 하여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두 번째, 명확한 증거와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믿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환자 본인이 오히려 배우자의 부정적인 행동에 대한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세 번째,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망상에 따른 행동이상을 동반한다.



스물네 살, 그 시절의 나는 <오셀로>를 읽고,
데스데모나를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지점은 하나였다.

데스데모나는 아버지의 권위를 거부하고, 귀족 아가씨로서 당대 사회적 금기를 어기며 흑인으로서 천대받는 오셀로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혼했던 주체적인 여성이다. 근데 왜, 오셀로의 질투와 폭력성이 자신을 공격했음에도, 어째서 무력하게 당하고 있음을,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자꾸 걸며 끝까지 그를 배신하지 않았음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되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늘 갇혀있는 귀족 사회에 살아왔던 어린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의 전쟁 경험, 고난, 이방인으로서의 여정에 깊이 매혹되었는지, 그 안에서 인간적 강인함과 숭고함을 발견했고 알아보았다는 기쁨이 함께 했는지.

그렇기에 그녀는 오셀로가 본질적으로 "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해야만 했고, 강인함이라 믿었던 그의 왜곡된 폭력성조차 "잠깐의 광기"라고 치부해야만, 그와의 사랑을 선택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르네상스 사회에서 여성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을 벗어날 수 없었고, 즉, 사실상 주체적 선택이라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제약당한다.

아직은 너무나 어리고, 사랑 하나만을 믿고 따라온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질투와 폭력 앞에서 방어 수단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나는 오셀로의 충실한 아내다"라는 말을 반복할 뿐. 카시오도, 이아고도, 심지어 아버지도 그녀를 끝까지 보호하지 않고, 그녀는 결국 자신이 진실로 사랑한 오셀로의 손에 목이 졸려서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온 존재를 걸고 사랑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싹트면, 그 강렬한 사랑이 곧바로 절대적인 질투가 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니스 사회에서 전쟁 영웅인 동시에 흑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늘 불안정했던 오셀로. 그에게 데스데모나의 고결한 사랑은 그의 자존심과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였다. 내 사랑이 나를 속였다는 생각은 곧 자기 정체성과 명예 전체가 박살이 나는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미쳐갔다.
이아고의 뱀 같은 조작으로 너무 손쉽게,
손수건 같은 알량한 '증거'를 통해.

군인답게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전쟁터처럼 결단을 내려버린다. 개인적인 복수가 아닌 자신 안의 도덕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린 귀족 아가씨와 나이 많은 흑인 이방인이 아닌, 타락한 여인과 배신당한 장군으로 남기 위해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가 사랑하는 얼굴은,
하얀 피부와 금발 머리카락의 카시오의 얼굴이 아닌, 시간 속의 숭고함, 진실, 고통 속에서 빚어진 위엄이 담긴 얼굴의 자신이었음을, 오셀로는 왜 몰랐었을까.

그 손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그녀의 고결한 두 눈으로 얼굴을 바라보던 그 의지조차, 끝까지 오셀로를 믿고자 하는 힘이었음을.

스물네 살의 나는 데스데모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나 좁았기 때문이란 걸.

이제 다시 이 낭독하는 나는, 데스데모나의 말로 단 하나만을 진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당신을 사랑한 건, 죄가 아니었다."



여담

(1)
셰익스피어 작품이라서 연기 톤도 고전적이고, 리뷰도 어렵고 딱딱하게 써지는데, 뭐 진짜 별 거 없고... 현대 사회에서도, 저런 일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말해도 믿지도 않고 "의심받을 짓을 한 네 탓이야." 하는 인간들 진짜 너무 많은데.

나 진짜 딱 한 줄만 쓰자.

병원 가라.




(2)
읽는 내내 너무 아가사 크리스티 <끝없는 밤>이 떠올랐다. 마이크 역시, "내가 과연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라는 말들에 시달리고, 엘리를 죽이지.

자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란 걸 왜 모를까.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고 봐줄 사람이 되어주는 것, 즉 신뢰. 그게 결국 자격인데.

작가의 이전글아픔을 동반하지 않은 교훈은 의미가 없다는 걸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