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스파이> p.102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태양에 정화되고 비에 씻기도록 상처를 열어 보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그때, 그동안 별로 친밀하지도 않았던 남자 앞에서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토록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습니다.]
전 세계적인 매혹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마타 하리', 얼마나 그토록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순간을 바랐을까?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동양주의, 팜므파탈, 댄서, 창녀, 스파이 등의 상징 조각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페르소나로서 소비됐지만, 자신의 실체는 그들의 욕망에서 점점 흐려지던 한 명의 인간.
"자유로운 너를 갖고 싶어.
넌 추악한 동시에 아름다우니까.
그게 안된다면 차라리 망가지고 부서져줘."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얼마나 그렇게 많은 눈동자들을 마주해야 했을까. 그 눈동자들이 자신을 살게도, 죽게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외줄 타기 같은 삶은 그녀를 어디까지 몰아세웠을까.
이 책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그런 그녀의 시점을 상상하여 쓰여있다.
책 속에서 그려지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20세기 초 파리와 전 유럽을 사로잡는 순간까지 늘 보인 자였다. 성폭행을 당한 교장실에서도, 스물한 살이나 많은 성도착증 남편과 숱한 남자들이 오가는 침대 위에서도,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닌 섹스심벌로서 춤을 출 때도,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는 이중간첩이라는 죄명을 다루는 심문실에서도.
그곳은 언제나 기록되는 것 없는 무대였고, 관객 없는 연극이었다.
마타하리는 춤을 추지 않아도, 연기를 하고 있었다. '눈동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 욕망, 사랑, 언론, 전쟁. 그들의 욕망 어린 눈들이 그녀를 생사의 한복판에 던져놨다.
당신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고, 누구의 죄도, 누구의 도구도 아니었다고 끝의 끝까지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그녀는 어쩌면 구원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의 여자가 될 수 없었던 여자.
누구의 시선에도 머물지 못했던 시선.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던 편지.
듣는 사람, 태양, 비.
그 세 개만 있어도 충분했음을.
"있는 그대로의 나?
내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어떻게 그대로가 될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요?
유럽을 단번에 사로잡은 무용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굴욕적으로 살았던 주부?
권력자들의 정부?
얼마 전까지 해도 찬탄하고 떠받들던 언론들이
이제는 "속물 예술가"라 부르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