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p.24 - 27
[대단히 강한 인간, 영웅, 천재는 충돌 속에서 천부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보다 너무나 좁고 적대적인 주위 세계와 만난다. 이처럼 충돌은 위대한 인물이 자기에게 맞는 기준과 분출구를 찾지 못할 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천재적인 인물은 내면의 소명이 마지막 힘을 발현하고자 불의 시련까지도 갈망하므로 자신의 수난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
[평범한 인물이 자신은 가능할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고 어쩌면 스스로 예견하고 느꼈던 것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그 목적을 위해 운명이 쥐고 있는 게 바로 '불행'이라는 채찍이다.]
["불행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 평범한 인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 마침내 비극의 본보기에 이르고 어떤 운명처럼 위대해졌기 때문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 않는가?"
아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했던 이를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일컬으며 그녀를 '악녀'로 만들고 비난의 화살을 쏟아왔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 말은 '장 자크 루소'라는 사람의 고백록 속에 쓰여있었으며, 그 말이 쓰일 당시 마리는 고작해야 9살이었다는 사실이다.
분노에 찬 많은 이들이, 왕족으로 태어나 왕족으로서의 무지 속에 그저 살아갔을 뿐인 그녀를 '탕아의 여왕', '국고를 갉아먹은 암컷'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저 오스트리아 이방인이었던, 한 소녀의 숙명과 절망 속의 이른 황혼을 보았다.
현시대로 치면 '인스타 패션 인플루언서' 였을 어린 소녀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략결혼의 산물이었다. 왕비가 되기 전까지 교육을 방임당한 왕실의 상품이었고, 마리는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연출된 '얼굴'이었다.
사치와 향락으로 절어진 삶을 살았다고들 비난하지만, 루이 14세 이래, 사치와 장식은 곧 권력의 상징이었고, 왕비는 패션, 미용, 무도회, 파티의 중심이 되어 궁정 문화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존재였을 뿐. 어린 오스트리아 소녀를 우습게 여기는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은 세상에서 배운 것은 그런 것이었을 뿐이다.
매달 밤 탕진하는 도박과 쾌락으로 헛헛함을 채우며, 궁정의 미의식에 따랐을 뿐인 그 어린 소녀는, 사치와 무지에 깊이 실망하는 어머니인 테레지아 여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답답한 자신의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천재도, 영웅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 역사의 비극을 뒤집어쓴 존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재정파탄과 빈부격차라는 진정한 현실과 단절, 민중의 고통을 모르는 자기중심적 환상 속의 왕비로 고착되고, 귀족들의 사치로 반감이 치솟던 민중들에게 숱한 미움을 받던 마리.
모든 것의 종말이 시작되던 1789년의 베르사유에서, 마리는 처음으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싸운다는 감각을 배운다. 도피 실패(바렌 사건) 이후, 왕실에 대한 민중의 적개심 폭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박한 위기 속에서야 왕비가 아닌, 비로소 책임 있는 '여인'으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프랑스 왕실 사회에서도, 민중 사이에서도 외롭기에 눈에 띄던 존재. 그래서 왕실 안에 자기 자신만의 전원 마을을 만들고 싶어 했었고, 위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이. 마리는 수많은 억측과 증오를 침묵 속에서 관통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대중의 여왕도, 프랑스의 왕비도 아닌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불행을 있는 그대로 선명히 인지하게 된다. 이 책은 그녀를 미화하지 않는다. 혁명의 칼날 아래 무너진 무력한 책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떠나지 않았던 단 한 사람. 페르센. 마리의 단 하나뿐인 영혼의 단짝이자 사랑. 그만큼은 그녀의 마지막 눈동자를 끝까지 지켜본 하나의 시선으로 남는다. 도피를 하는 순간마저도 마리와 루이 16세를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만들어 도피시켜주고 싶어 했고 (페르센의 이 부분을 읽고 피식 웃었다. 떠나는 순간까지 아름다웠으면 좋겠어,라는... 낭만은 잘 알겠지만)
그는 결국 그녀의 이름이 아니라, 침묵 속에 남은 숨결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리가 죽음을 향해 갈수록, 더 이상 사치스럽다 비난도, 바보 같다는 조롱도 듣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하얗게 세버린 머리카락을 지닌 마리의 단두대에 선 마지막 순간에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품위를 보았다. 그때 비로소, 많은 이들이 깨달았다.
"우리가 잘못된 사람을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페르센은 끝내 그녀를 구하지 못했지만, 마리를 인간으로 남기려 했다. 떠날 수는 없었지만 닿을 수도 없었던 사람. '진짜 마리'를 아는 단 한 사람. 무능한 남편 루이 16세와는 다를, 어쩌면 마리의 유일할 사랑.
마리는 권력을 가진 적 없었다.
죽음 끝에서야 자기 자신을 직면했으니까.
사랑은 구원하지 못했고,
그녀를 미워했던 민중은 진실을 너무 늦게 보았다.
물론 나는, 무지 속에 살았던 그녀를 미화할 수도, 감쌀 수도 없다.
다만 그녀를 구하지 못한 시선인 페르센에게, 마리의 마지막 이름을 들었다.
누군가의 왕비도, 아이콘도 아닌, 단지 '마리'였던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