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다는 말. 그 말을 믿는지ㅡ (未)

24살의 12월. 일 년 간의 삽질.

by 도한솔 I Solar



인생에서 가장 구질구질하고 민망하지만, 해본 사람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꺼내자면 내 스물네 살의 짝사랑이다.


당시 12월, 동갑내기였던 신예 뮤지컬 배우인 그의 공연을 친구의 초대를 받아 보러 가서는, 공연 직후 우연히 문 앞에서 마주치고, 그 멍한 감각에 이름도 말도 못 하고 "저는 OO이 친군데요!"라고 고장 나서 말하기 시작했던 그날의 기억. 무대 위가 아니라 가까이서 마주한 그의 나를 샤이(shy)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1년 동안 내 온갖 삽질이 시작되었다.




다른 학교이긴 했어도 같은 전공이었기에 주변에 건너 건너 연결고리는 있었지만 당최 닿을 길은 없었다. 라이징 스타인 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만 들락날락할 뿐 팔로우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이 말도 못 하게 초라했다.


그냥 혼자 아무것도 못하고 비밀처럼 끙끙 앓다가, 친한 학교 선배한테 툭 까놓고 이야기를 꺼내보니, "한솔아, 그러면... 그냥 디엠을 넣어봐~"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나의 머릿속은 온통 그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 찼다. 신예로서 잘 나가는 그에 비해 나는 잘하는 것 없는 연극영화과 학생일 뿐이었다.


"그 사람은 주변에 이쁜 여자들이 많겠지, 눈코입 큼직큼직하고 엄청 마른 여자애들 좋아할 거야, 나는 고작 학교 재학 중인데, 그렇게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지, 저 얼굴에 라이징 스타인데 어떻게 연애를 안 하겠어...(ㅠ) "


당시 현장 스텝이던 친구가 나에게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응하는 척하면서, 그가 너무 궁금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뭐 그런 거. 그날의 만남 하나가 뭐라고 나를 자꾸 예민하게, 더 감정을 무겁게 만들었다.

어쩌다가 연습이든, 그냥 놀러가든, 공연을 보러가든, 대학로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치면, 특히 그 계절이 코끝 시린 날씨일수록, 눈인사만 굉장히 어색하게 하거나 피하곤 했다. 그가 하는 공연? 못 봤다. 그때의 나는 그에게 팬으로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무대 위의 그의 배우로서의 모습보다는 무대 아래의 모습으로서 마주하고 싶었다는 비겁한 변명. 이상한 자존심.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내가 나를 너무 아래로 두고, 더더욱 인기가 많아지는 그를 점점 위로 올려서 싱숭생숭 해졌다. 문제는 마음의 병이 심해져서 사고 패턴도 이상해졌다.


"어차피 잘 되어도 그의 팬들이 가만 둘 리가 없어. 내 친구도 그를 (배우로서) 좋아하는데, 그건 안 될 일이야. 나한테 실망할 거야... 아니, 여친 있지 않겠어? 정신 안 차릴래?(ㅠ) "


주변에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을 때, 네가 하는 그건 사랑이 아니라며 제대로 연애나 하라고 윽박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한 사람에게 꽂힌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깊게 숨겨둔 내 감정이 집착과 자격지심에 절어 너무 시커멓고 무겁고 끈적끈적거리는데, 그는 그날의 마주침에서도 그 어떤 것도 못 느꼈을 것 같은 걸 생각하니 비참하기도 하고 그랬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초라했던 건, 그가 여러모로 잘 될 사람인 게 내 눈에 확실히 보이는 사람이기도 해서였기도 하고.




그리고 접혔다. 딱 1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코로나 시기가 오기도 했었고,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감정이 사치가 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내게 20대 중반은 너무나 추운 계절이었지.

사실 잘 아는 것도 없는, 그 한 번의 마주침. 그 이름도 말도 못 하던 12월의 어떤 순간. 왜 좋았는지 말하라 하면 '그냥'이라고 할 거 같기도. 외모나 성격, 실력 이런 거 전부 말고. 그냥 그 순간이 날 그렇게 만들었었으니까 잊지 못해서, 그냥.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할 때 당시는 진짜 너무 힘들었거든. 혼자 가슴 부여잡고 끙끙거린 적도 있고, 운 적도 있고..., 한 번은 그가 너무 유명해지면 내가 대등해지기 힘들 테니까, '그가 좀 덜 잘됐으면' 하는 못된 생각도 잠깐 한 적 있다.

근데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마음이 가라앉고, 그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추억이 될 때 즈음 점차 배우로서의 그의 연륜이 궁금해져서 한두 번 공연을 보게 되거든 그의 회차인 날 부러 잡아보기도 하고. 무대 위의 그가 잘하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 사람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걸 처음 본 그날부터 알았고,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게 아녔다, 싶었으니까.


그래도 살아가면서 아주 가끔씩, 그 사람이 생각났다.

이름조차 말하지 못했던 순간이 아쉬워서,

안 그래도 됐는데 초라했던 스물네 살의 나의 바보짓이 안타까워서.


24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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