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머스탱", 책임의 무게를 아는 남자

내 안의 아니무스에 대해.

by 도한솔 I Solar


지난 2025년 내내 가급적이면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고 수녀 같은 삶을 살기로 했던 건, 내 가장 여린 마음과 너덜 해진 몸에 회복과 정렬을 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날 너무 순진했던 탓도 있다.

스물여덟부터 서른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냥 툭 까놓자면 4 연속 이미 여자 있는 남자들이 자기들 욕심껏 힘들게 했다 하면 다들 헛웃음치곤 한다. 나는 그렇다 해서, 내가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의 피해자 혹은 희생자라는 그런 불행과 투사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그냥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좇았던 하나의 원형을 찾는 과정에서 많이도 속았다고 결론 내렸다.

<강철의 연금술사>, 리자 호크아이의 운명 공동체.
'로이 머스탱' 말이다.




짙은 검은 머리, 항상 단정하게 빗어 넘겨 흐트러짐이 거의 없고, 걸친 군복마저 절제되어 있는 실루엣. 흔들림 없는 올곧은 검은 두 눈동자.


불꽃의 연금술사 머스탱은, 그 능력마저 자신의 성격 그 자체다. 파괴력과 통제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불꽃의 연금술. 특히나 그의 능력은 정밀 제어에 특화돼 있어 굉장히 계산된 처형자에 가깝다. 사기적인 능력치의 그는 이슈발 학살에 직접 가담했고, 이를 변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언제나 리자 호크아이를 둔다. 리자와 머스탱의 관계는 단순히 로맨스라기보다는 이슈발 내전이라는 거대한 가해의 역사에서 같은 죄의 짐을 함께 지는 동료이자, 서로를 지탱해 주는 역할이랄까.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는 아니다. 대신 끝까지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 지켜야 할 대상이라기보단 서로의 앞에서 감정적으로 무너져도 괜찮은 사람이다.


머스탱은 다른 모든 순간에서는 감정적으로 절제를 지킨다. "미니스커트 규정" 같은 발언으로 의도적으로 가볍고 속물적인 상관 이미지를 만들어서 눈속임을 하기도 한다. 그런 그는 그 어떤 관계도 함부로 소비하지 중복하지도 않는다. 그런 머스탱의 진짜 모습을 아는 그의 직속부하들은 그의 야망에 기꺼이 동참을 한다.

머스탱과의 접점 끝에 완전히 타들어가 소멸하는 색욕의 호문쿨루스 러스트마저도, 마지막 순간 그의 흔들림 없는 올곧은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패배가 의미 없지 않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리자는, 자신의 친구를 죽게 만든 엔비를 향해 치솟는 복수심에 휩쓸려 처참하게 죽이려 드는 머스탱을 멈추기 위해 이를 악물고 총을 겨눈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가혹하지만, 그를 복수에 찬 괴물로 남기지 않기 위해 처절히 토해내는 리자의 신뢰. 그의 야망의 근원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


애초에 머스탱의 야망은 개인적으로 나 하나 뛰어나고 잘났고, 영웅이 되고 싶고, 내 감정대로 굴고 싶고 그런 거 때문에 권력 잡고 싶어 하는 게 아니거든.

"위로 올라가서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목표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이슈발 내전이라는 끔찍한 짓에 가담한 가해자가 하는 속죄 방식이랄까. 그래서 진리의 문을 강제로 열게 됐을 때도 그 올곧은 눈이 가진 시력을 빼앗기게 된 거였지. 본 대가로,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 가혹함.

그렇지만, 머스탱은 이걸 자신이 저지른 그 모든 가해의 책임이라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메스트리스의 미래를 위해, 현자의 돌을 이용해서 다시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도 그는 자기 자신이 우선이 아니다.

머스탱에게 우선순위는 항상 이렇다.


자신이 만들어낸 피해
나의 선택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타인의 회복,
그다음이 자신.


그래서 자신으로 인해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부하 하보크의 몸부터 고치는 것을 우선으로 조건을 걸지. 멋있지 않나. 자신의 욕망과 책임의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남자.

리자는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곁을 지키고 싶었던 거야.





여담

그니까, 내가 순진해서 많이도 속았다니까. 설마 하고 끝까지 사람으로서 믿어보려 했던 나도 미련했고. 근데 게 중 단 한순간도 아니무스조차 아니었던 사람도 있는 건 전혀 미안하지 않지만 미안한 부분.


진짜 겉만 보면 감쪽같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굴어서 아무도 몰라. 내가 성격이 보수적이라서 그게 굉장히 다행이었어. (사실은 아직도 조금 힘들긴 함.)




연속적으로 그러다 보니 내가 이상해서 이상한 사람들만 골라 겪었나...,라는 생각을 2025년 내리 많이 했었는데, 원래 책임보다도 자신의 체면과 욕망이 우선인 건 옛날 옛적부터 많은 남자들이 그랬는데 내가 늦게 알아챈 거래.


근데, 책임이라는 게 뭐 거창한 게 아니라고 나는 보는 편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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