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이 오빠", 보기만 해도 좋은 존재

심미적 동경에 대해.

by 도한솔 I Solar


내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아는데, 지난 삼십 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얼굴 취향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같은 그림체를 가지고 있다.

뮤지컬배우 강필석, 배우 송강, 샤이니 이태민, 갓세븐 진영, 제로베이스원 성한빈. 딱 거기서 테 얇은 안경만 씌우면, 하나의 원형으로 귀결이 된다.

카드캡터 체리, 체리의 영원할 첫사랑,

'청명이 오빠' 말이다.




"청명이 오빠!"


큰 키의 쭉 뻗은 시원시원하고 마른 팔다리. 투명하고 하얀 피부. 안경 너머의 눈토끼 같은 커다란 이목구비. 청명이 오빠는 항상 웃고 있고, 부드럽고, 거절하지 않고 상대의 감정을 받아준다.

그래서 체리에게는 햇빛 같은 안정을 준다.
"체리야."라는 그 다정한 말씨와 나긋나긋한 칭찬에 체리는 곧잘 수줍어지곤 한다. 근데, 사실 체리의 감정은 연애 감정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걸 나도 최근 들어서 성찰해 보며 알게 된 거랄까?

체리는 청명에게서

설렘보다 안도를,

욕망보다 존경을,

소유욕보다 따뜻함을 먼저 느낀다.


이건 또래 남자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어린 체리의 기준에서 어른에 가까운, 그 어떤 위협 없는 존재에 대한 감정이다. 현실 또래 집단에서 누군가를 사귀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야 하고, 상처받을 위험도 크니까. ​


체리에게 그는 “넘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아할 수 있는, 동경이다 보니 거절당할 이유도 없고, 실패해도 자기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대상이다.

그러니 체리에게 청명은 감정을 연습해도 너무나 안전하다. 어차피 소유도 불가능하고, 거절도 없고, 그냥 보기에 아름다우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사람.
쉽게 말하자면, 덕질이지.

오늘도 오빠가 멋져. 오빠는 오늘도 상냥해!


근데 체리가 카드캡터가 되어 카드를 모으며 마력이 강해질수록, 체리는 닿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 '함께 서야 하는 사람', 즉 경쟁자이자 또래 이성 친구였던 샤오랑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체리가 동경했던 청명의 진짜 모습이, 또 다른 크로우 카드, 달의 수호자 유에임을 알게 되면서 확실히 깨닫는다.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상냥한 청명은 유에가 인간 세계에서 부서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보호막이었다는 걸. 그러니까 자신이 카드캡터로서의 성장을 위해 그에게 끌렸었음을 자각하며, 체리에게 첫사랑의 실패와 성숙을 가르치는 거울로서 남는달까.

생각해 보면 그 어린 체리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깨끗했다.


거절당할 리 없는 상냥함
욕망할 필요 없는 거리감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하지만 손잡고 싶지도, 연인 관계를 만들고 싶지도 않은. 그러니 청명 오빠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전 마음을 다치지 않게 보호해 준 '가장 예쁜 유리벽'이었지.


돌이켜서 보면, 청명이 오빠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꿈'이고, 유에는 차가운 '현실'이라는 게 이 카드캡터 체리 속에선, 좀 슬프긴 한 부분이다. 청명이 오빠는 끝까지 착하고 화도 안 내고 모두에게 다정하지만, 누구와도 깊게 섞일 수 없거든. 유에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지고, 청명 자기만의 이야기나 욕망 대신 모두를 위해 박제된 다정함이라서.


나도 청명이 오빠가 천년의 이상형이었지만 말이야.





여담


내가 체리 같았던 시절이 얼마나 길었는지, 20대 시절엔, 더더군다나 남자들과의 연애 뭐 그런 쪽보단 오직 맑은 수면처럼 나를 비춰주기만 하는 그 청정무해함만 필요했어서, 덕질 창고(?)에 취향인 청명상 얼굴의 배우들과 아이돌을 아주 차곡차곡 모아서 뿌듯해하곤 했다. 지금 역시 우리 한빈이만 해 그런 쪽이고(?)


다만 이제는 서른 전후 그때와 좀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덕질을 해도, 체리처럼 동경의 감정으로 나의 보호막이길 바라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행복 역시 바래줄 수 있달까. 아이돌, 댄서 그런 거 안 하는 날이 와도 그냥 너는 좀 행복해야 해, 이런 거. 나는 그 빛나는 두 눈을 믿으니까, 되려 내가 청명의 포지션으로 지켜봐 주고 싶어.




근데 웃긴 게, 내가 여태까지 현실에서 동경을 떼놓은 감정으로 느꼈던 흔히 말하는 '아니무스(Animus)'는, 외모적으로 청명상보다는 그 내면이..., 다음에 쓸 글의 예고이긴 한데, <강철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 쪽이랄까. 물론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멍청하게 속은 쪽이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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