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주파수의 세계
나는 성당을 나가곤 하지만, 아무래도 20대 내리 사근사근한 INFJ였던 내가, ENTJ(2년 전 바뀐 이후 굳어짐.)로 MBTI가 바뀐 이후 더더군다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천국과 지옥의 효율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곤 했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해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그렇게 많은데. 천국은 착한 사람들이 가서 영화를 누리고, 지옥은 나쁜 사람들이 가서 영원히 고통받는다니. 교화나 균형의 관점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고, 이미 끝난 뒤에 벌을 주는 건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지 않나?
근데, 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 인지학, 양자역학, 점성학, 천문학 등등... 혼자 책을 읽고 공부를 좀 하다가 다시 떠올랐던 거지.
사람은 죽어서도 끼리끼리라는 말을.
곰곰이 따져보면 사람 사는 게 그렇다. 서로 질투하고 의심하며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단톡방이 있다고 치자, 그곳이 바로 실시간 지옥이다. 반대로 겉으론 좀 투박하고 힘들지언정 서로를 해치지 않으려 애쓰는 관계 속에 있으면 묘하게 숨통이 트인다.
이건 불교의 업(Karma)이나 기독교 신비주의의 영적 상태, 혹은 리얼리티 트랜서핑(물리학 기반)에서 말하는 '가능태(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와 주파수'가 만나는 지점과 닮아 있달까.
종교적인 시선을 곁들여 보자면, "너는 70점이니까 천국"이라고 판결하는 것보다, 에너지의 결에 따라 자동 분류되는 시스템이 훨씬 경제적이잖아?
비슷한 상태는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동시에 서로 다른 상태라면 안간힘을 써도 떨어진다. 결국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갈지 심판받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머무는 마음의 상태대로 이미 그 세계 안에 발을 담그고 있는 건지도.
그니까 천국은 대단한 보석이 박힌 성이 아니라,
내가 타인의 투사로부터 자유롭고,
내 자아의 명료함이 유지되며,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상태라는 게 내 결론.
지금 반복하는 감정 패턴,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는 인간관계.
심판은 어쩌면 "너는 평생 네가 가꾸어온 그 마음의 상태와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이다!"라는 어마무시한 선고일지도 모르지.
나 스물아홉에, 내가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배님께서 관계에 휩쓸려 고민을 이야기하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셨지. 본인을 시기 질투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겉으로는 무던하게 넘어가는 척, 속으로 그러셨다더라.
"네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그런 마음가짐으로
누구 미워하고 신경 쓰는데 시간 쏟느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안 되는 거지."
그리고 한참을, 갑자기 나에게 "한솔아, 나는 있잖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그 분. 롱런하는 뮤지컬 스타로서 살아가기 위해, 묵묵히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해 온 진짜 백조의 이야기를 하던 외로움마저도 그저 해야 할 일들을 위한 책임감을 보여주셨다.
나는 그날의 그 분과의 대화 덕분에, (이다음에 쓸) 구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
사실 이 이야기 쓰게 된 게, 작년 9월.
같이 커피 마실 때, 상준 씨(영원할 나의 조언자)에게 혼나서였거든. 관계 권력이라던가, 투사라던가... 있는 그대로의 속상함과 답답한 감정을 말했더니,
뭐가 됐든 어떤 유치하고 저급한 형태에 왜 한솔 선배가 자꾸 휘둘리고 속상해야 하고, 매년 우리가 이렇게 커피 마시는 시간에 왜 그래야 하냐 했지. 그 일침에 반성 징그럽게 많이 했고, 내 안을 시끄럽게 하는 그 소음(Noise)들을 더 치웠지.
난 아무리 그래도 지금 천국에서 살고 싶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