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서 파멸하고, 알 수 없어서 분열하는 우리

<Trace U>, 오이디푸스와 나르시스

by 도한솔 I Solar




내일 어쩌다 보니,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뮤지컬 <트레이스 유> 보게 되었다. 내 나이 19살 초연 때(벌써 그게 13년 전이다!) 처음 보고 나서 대단히 실험적인 작품이라 생각해서 좋아했던 작품. 연극 뮤지컬 배우를 꿈꿨을 때는, 꼭 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던 게 너무 먼 과거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매년마다 한참 위의 학번이신 학교 선배님의 연기를 어쩌다 보니 한 번씩은 보게 되긴 하는데... 이 작품을 하실 줄이야, 싶어 가지고.


내일 공연 보기 전에 이미 대학 시절 1학년 때 떼버린, 작품의 원형인 <오이디푸스 왕>을 한번 읽어보다가, 또 다른 작품 원형인 나르시스 신화와도 연관해서 내 방식대로 파악해 본 글을 써볼까 한다.


※ 스포일러 안하려고 애썼으니 편히 읽으시길





일단 희곡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의 그리스 테바이(Tebai) 왕국에 재앙과 질병과 혼란이 닥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탁이나 운명에 의해 근본 원인을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오이디푸스는 문제 해결자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이미 오이디푸스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닥칠 진실을 모른 채 추적을 계속하고, 주변 인물과 증언, 과거 사건을 탐색하며 증거와 단서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이내 비극적인 진실이 밝혀지고, 파멸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진실 인식의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걸을 깨닫는다.


파멸은 이미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고, 오이디푸스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이 비극을 완전히 '인식'한 이후, 스스로 눈을 찌르고 죽음을 선택하는 등으로서 추락을 하게 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기 파괴의 길.

대략적인 줄거리이자 작품의 플롯은 이러하다.


이 작품이 핵심적인 이유는 파멸은 사건이 아니라 '인식'에서 온다는 사실. 그 어떤 반전 자체보다 주인공인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추격한 이후 알아차리는 과정이 비극적이다. 주변 인물들은 이 끔찍한 재앙의 여파를 경험하고, 관객은 그들을 향한 연민, 공포, 혹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것이다.


​"인간은 운명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운명과 맞서게 된다."

그게 끝이든, 루프가 되었든, 이 거대한 운명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오만은 그저 발악일 뿐이라는 사실을 잔인하게도 말해주는 작품, 오이디푸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의 '오만'은 뭐였을까? 이게 병리학적인 현상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원형 나르시스 신화와 연결된다.


나르시시즘이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Narcissus)에서 따온 말. 수많은 여성들이 고고하고 아름다운 그를 사랑했지만, 그는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그를 사랑하다 못한 한 요정의 간절한 기도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은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이 물에 비친 모습에 반해 빠져들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신화에서 나온 것처럼,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은 자기애와 자기 몰입의 극단적 형태를 이야기한다.

근데, 나르시시즘이란 게,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 자기 중심성, 자기애적 성향을 말하지만, 단순히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 감정,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거든.


사람은 누구나 인간 본성적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건강한 자존감과 자기애는 자기 보호, 성장, 목표 추구에 너무 필수적이다.


근데 이 병적인 나르시시즘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는 그 수준을 뛰어넘는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믿고 있고,
과도한 칭찬과 인정 욕구에 급급해서,
타인을 이용하거나 조종한다던가,
질투심이 많거나 타인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믿거든.


되게 과시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고, 사실을 취약하고 불안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애적 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보통은 하나만 두드러지는 듯해도, 사실은 과시와 취약함이 한데 엮여서 나타난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공통적인 현상을 보인다.

처음에는 상대를 '완벽하다'라고 칭찬하다가,

실망이나 자기 위협이 생기면 그 사람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투사'를 던져버리고,
자신의 결점과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중요함 혹은 특별함을 상상 속에서 강화해 버린다.


Idealization, Projection
Denial,Fantasy.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수수께끼를 푼 영웅이고, 신이 나 예언자의 도움 없이 오직 '나의 지혜'로 도시를 구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예언자 데이시레아스가 경고를 해도, "내가 수수께끼를 풀 때 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데?"라며 그를 무시한다. 그리고는 조사가 자신을 향해 오자 "이 모든 것은 음모다, 처남인 크레온이 권력을 탐내어 예언자와 짜고 자신을 모함한다"라고 믿으며 바깥으로 투사를 던져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 비밀을 끝까지 파헤친 이유도 역설적으로 "내가 누구인지(얼마나 고귀한 혈통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던 지극히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일 뿐이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의 운명을 넘어선 특별한 사람이라 믿는 오이디푸스, 나르시스가 거울(물가)에 비친 타자가 '자신'임을 몰라서 죽음을 맞이하듯,
오이디푸스는 세상의 범인이 바로 '자신'임을 몰라서 파멸한다.



그래서 느끼는 게 뭐냐면, 이 두 개의 작품이 원형인 <트레이스 유>는 어느 무엇보다 인간의 오만 그 자체를 다룬 작품이라서 뭐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겠다던가, 얘는 왜 이렇게 표현하는가, 왜 미쳐있는가로 접근하면 힘든 구조이다.


애초에..., 비극 <오이디푸스>가 그리스 시대에 소포클레스 손에 쓰였을 때도, 배우 개인이 이 작품을 느끼고 평가하라고 쓰인 게 아니고, 그걸 뭐라 해야 하냐... 신을 위한 제사(Ritual)로 만들어졌던 거거든. 즉,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 인간들이 이렇게 오만합니다, 신이시여. 이 미련한 구조를 봐주세요.'


그렇다고 현대에 와서 신(God)을 운운하기엔 거창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배우로서 한 가지는 명확해지지.


"난 매번 진실을 새로 발견할 필요가 없다"는 거. 왜냐하면 이미 같은 진실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피하다가 파멸하는 게 인간들이니까.

알고 싶어서 파멸하고,
알 수 없어서 분열하고.



근데, 진짜 나 왜 어릴 때는 이 작품이 그렇게 해보고 싶었을까? 락 뮤지컬이라서도 있을 거고, 이 작품 만드신 김달중 연출님의 방식이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그랬을지도. 난 감정을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 정말 어쩌란 건지 싶거든.

진짜 힘 있는 작품은, 작품에서 전체 구조가 해야 할 일은 배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그 구조 자체로 모든 게 설명이 되고, 배우가 잘못 건드리지 않게 막는 것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일 선배님께서 잘해주셨으면 좋겠다. 너무 오랜만에 뮤지컬 보는 거라서 두근두근함.)


내일 나는 클럽 드바이에서, 혹은 테바이의 광장에서 어떤 오만을 목격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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