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가 아닌 지나가는 인문학자입니다만.
사실 나는 안다. 평소엔 화를 잘 내지 않지만, 한번 화가 나면 소위 말하는 '보통 성질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삼수를 결심하고 찾아간 강남의 유명 연기학원. 원장은 스무한 살의 나를 앞에 두고 테스트를 마친 뒤, 실실 웃으며 칼날 같은 말을 내뱉었다. "너 같은 애는 배우 하면 안 돼. 배우는 남이 보고 싶은 걸 보여줘야 하는데, 너는 네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잖아. 미술관에 걸린 예술도 결국 가치 있게 팔려야 상품인 거야."
이제 갓 스물한 살 된 여자애가 얼마나 그 말에 충격을 받았겠어. 나가는 순간까지 나를 도살장의 가축 보듯 훑어내리던 그들의 눈빛. 이후 다른 학원의 원장님(지금의 은사님)께 펑펑 울며 이 이야기를 전했을 때, 선생님은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딱 한 마디를 던지셨다. '누가 그래요?(;;)'
음, 우여곡절 끝에 남들 이름 대면 아는 학교에 들어갔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열등감과 절박함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해도 안 되는데, 그저 좋아서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마음 깊은 어둠. 코멘트를 유독 두려워하던 나를 따로 부른 은사 교수님 앞에서 나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내 안의 어둠을 가만히 응시하던 은사 교수님은 조용히 입을 떼셨다.
"한솔아,... 넌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니? 잘 들어.
네가 만약 한국이 아닌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너는 진작 영화제 스크린에 떠 있었을 거야."
그게 나를 달래려고 하신 말이든 뭐든, 그 말은 단순한 위로 이상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그 연기 학원을 다녔던 동기 둘에게 들었던 바는, 그 학원 원장이 아주 상습범이었다더라. 누군가에겐 너는 눈이 예쁜데 나머지는 못생겨서, 넌 성대 질환 때문에 '너 같은 애는 배우 하면 안 돼.'
나 혼자 당했을 땐 참았지만, 내 소중한 동기까지 그런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더라고? 그래서 스물두 살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네*버 플레이스에 나와 그곳을 거친 아이들이 겪었을 일들을 압축해서 익명으로 쓴 후기, '당신들의 오만이 얼마나 오래갈지 지켜보겠습니다.' 별 한 개도 아까운 점수와 함께.
근데 얼마 후 그 학원의 리뷰란은 폐쇄되었고..., 나중에 보니까 그 원장이 학원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최근 10년이 지나 동기들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으며 "나 대신 복수했었어! 칭찬해죠!"라며 웃었지만, 사실 그건 복수라기보다 '거울'을 비춰준 것에 가까웠다.
내가 좀 승질머리(?)가 그래.
근데 사람 인생이 데자뷔라고 했던가. 훗날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16살의 한 아이를 만났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돈을 이렇게나 내고 반대하는 길을 가게 해 준다며 역정을 내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 부모의 압박 속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그 친구의 표정은 늘 무거웠다. 예전의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이라면 어디 내 수업 중 표정이 그따위냐며 윽박질렀겠지만, 나는 그저 차례가 되면 시키고 내버려 두었다. 비판적인 부모나 선생 아래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병은 반드시 터져 나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임계점이 되었을 때, 그 친구는 결국 수업을 하다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요."
"누가 그래, 지금 내가 그랬어?
내 눈이 그렇게 말해?"
고개를 젓기에, 나는 고개를 까딱하고 이 친구에게 말했다. 잘 들으라고. 너희 어머님한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선생님은 이 분야에서 전문가고 네가 해도 안된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다고. 그리고 내 수업 듣는 이 친구들 중, 나한테 배우는 이상 단 한 사람도 네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너는 한 달 전보다 좋아졌고, 엊그제보다 좋아졌고, 과거의 너는 지금 이 순간 없다고.
결국 진정하고 세수하러 간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찰나에 생각했다.
아, 교수님이 이래서 나한테 그러셨구나. 얼마나 그 스물두 살 여자애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아프셨을까.
"사람이 사람에 대해 공부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근데, 생각을 해보자고.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이 명작인지 낙서인지는 사는 사람이 결정할지 몰라도, 그 위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는 과정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여기저기 전시, 갤러리, 경매 보면서 정말 많이 느꼈거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 있을 때는 한평생을 인정받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면서 괴로워하다가 자살했구먼. 연극 <아트>에서는 흰 캔버스에 하얀 물감으로만 칠한 그림(앙뜨로와)을 5억으로 낙찰받은 세르주에게 친구 마크가 열받아하고, 서로 논쟁하잖아.
"어디 그런 '흰 판때기'를 들였느냐! vs 네가 예술을 아느냐!"
나는 기술자가 되기보다 인문학자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기본'은 베스트 버전의 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렬'하는 과정이거든. 나조차 미숙하기에 누군가를 완벽히 가르친다는 오만을 부리고 싶지 않다. 보이스 센터의 교육 인턴 과정을 거치고 중국 워크숍과 작품 기회까지 얻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나는 결국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뛰쳐나왔던 입장이기도 하고. 그래서 양심 있는지라 레슨 같은 거 안 한다. 나보다 잘 가르칠 사람들도 세상에 많을 텐데, 뭐.
무엇보다, 난 내 캔버스에 뭘 그려야 할지 아직 다 정하지도 못했어.
여담
몰라, 나는 이렇게 배웠다.
나의 원장님도, 은사 교수님들도 그래야 한다고 했어.
내 본연이 파란색이면, 나를 더 새파랗게 만들어야 한다고.
혀끝에 칼 박힌 사람들을 예전에는 참 많이 미워하고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미움이라는 건 상대적인 감정일 뿐인데. 결국 내가 보고 싶은 상대의 모습을 보는 것 아닌가?
그 사람들은 그냥, 파란색이 싫었나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