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빚은 터무니없이 생생한 초록 불빛

<위대한 개츠비>

by 도한솔 I Solar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도입부 첫 문장.

[내가 지금보다 더 젊고 마음 여렸던 시절, 아버지께서 내게 충고를 한 가지 해 주신 적이 있는데 난 지금까지 늘 그 충고를 마음속에 되새겨 왔다.

"누구든 흠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누리고 산 건 아니란 걸 잊지 말아라"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




끝내 사랑이라 부르는 한 남자의 집착,

우리는 어디까지 순정으로 봐야 할까?

닉 캐러웨이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뉴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섣불리 단죄하지 않고 바라본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개츠비라는 기묘한 인물을 단순히 '위선적인 신흥 부자'로 마주하지 않는다.

다만, 개츠비의 집요한 시선이 쫓고 있는 무언가를, 그 감정선을 함께 따라가 볼 뿐.


이웃이자 제삼자인 닉은, 매주 개츠비의 저택, 토요일 밤이면 수백 명이 모이는 초호화 파티에 유일하게 초대장을 받는다. 수영장, 댄스홀, 정원, 보트, 이 저택 전체는 놀이터가 되고, 저명한 손님들은 대부분 개츠비와 친분이 없었지만 누구든 올 수 있다. 금주법의 시대였지만, 각종 술과 재즈는 모두를 향락에 젖게 했고,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연출은 그들을 매혹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향락은 개츠비 자신의 향락이 아닌, 사실상 한 사람을 위한 함정이자 광고판이라는 것을 닉은 알아버린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속 데이지 뷰캐넌


데이지 뷰캐넌은 존재 자체만으로 개츠비를 흔들어버렸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집착의 대상이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가난했던 시절,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세계이며, 그녀의 집, 옷, 말투,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개츠비가 속하고 싶었던 상류층 그 자체였으니까. 이미 부유한 재력가인 톰과 결혼까지 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개츠비는 부를 축적하고, 화려한 저택을 짓고, 파티를 연다.

데이지를 얻는 것이 곧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자 자신의 꿈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그는 너무나 굳건히 믿고 있었으니까, 데이지의 결핍조차 그에겐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느껴졌으니까, 그는 포기가 되지를 못한다.


그녀의 남편인 톰 뷰캐넌과는 또 다른데, 톰의 근원은 태생적 부와 계급, 남성 우월감에서 출발한다.

톰은 그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기보다 트로피로 여기며, 데이지를 잃는 것보다, 자신의 소유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자신은 하류층의 여인으로 머틀을 깔보는 동시에 그녀와의 노골적인 불륜을 즐기면서도, 개츠비를 조롱할 때 너는 "우리 계급" 출신이 아니라며 태생을 들먹이는 것도, 데이지를 자신의 세계에 묶어두기 위한 논리일 뿐.


결국 개츠비의 집착은 과거와 꿈을 되돌리려는 집념. 톰의 집착은 자기 보존, 자존심, 권력 유지의 본능에 가깝다.


둘 다 사랑은 아니다. 사랑처럼 가장된 욕망의 형태이며, 두 사람 모두 그렇기에 데이지를 결코 포기하질 못한다. 그리고 데이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를 택해야 살아남는지.


남편인 톰은 거칠고 폭력적이며 불륜을 저지르지만,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생존 방식을 잘 알고 있는 남자다. 그렇기에 그녀는 환상과도 같은 개츠비가 아닌 톰의 세계를 택한다.


사랑보다 안정, 환상보다 현실.

그녀는 약하지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계산적이다. 그 점에서 데이지는 피해자이자, 생존자이며, 기만적이다.


그럼 닉은 어떤가.
모든 걸 지켜본 그는 끝내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었고, 때때로 분노하지만, 끝내 데이지에게도, 톰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개츠비가 쫓은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닉은 현실로 돌아간다. 그가 지킨 건 진실이 아니라, 남겨진 자리의 공허였다.

결국 닉은, 이 허황된 파티의 환상과 자기기만을 관찰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결국 묻는다.


정말 "위대한" 건 누구였을까?
정말 "사랑한" 건 누구였을까?
누가 가장 "솔직"했을까?


그러니 다시 묻는다.


Hi, I'm Gatsby


우리가 끝내 순정이라 말하는
그 집착이 정말 사랑이 맞았을까?




여담


최근 앱스타인 파일 사건 때문에, 뒤늦게 <위대한 개츠비> 북리뷰를 꺼내본다. 7년 전 승리 버닝썬 게이트까지, 타락한 자산가들과 권력자들이 그 안에서 화려한 파티와 부를 쫓으며 스스로를 '위대한 개츠비'라 칭하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짓은 권력을 확인하고 과시하며 타인을 착취하는 수단일 뿐이야.


어쩜 그리도 자신들의 추악함을 '성공한 남자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근사한 포장지로 감싸기 급급한지. 그들이 흉내 내는 것은 개츠비의 낭만이 아니라,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톰 뷰캐넌의 오만과 부패한 시대의 찌꺼기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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