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눈부심이 나를 녹여왔어

<씁쓸한 초콜릿> with audio

by 도한솔 I Solar

미리암 프레슬러 <씁쓸한 초콜릿> 마지막 페이지,





[지방은 녹아내리지 않았다. 에바가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녹아내린 지방이 악취를 풍기며 배수구로 흘러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에바는 갑자기 자신이 원했던 에바가 되어 있었다. 에바는 웃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프란치스카의 놀란 얼굴을 앞에 두고 깔깔 웃어 대며 웃음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름날 같아 보여, 내가. 여름날 같아. "]





에바, 거울 속의 15살 소녀는 '자기 구석'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뚱뚱한 몸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스스로 외면받는 방법을 선택하는 친구이다. 아무리 성적이 좋고, 착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건 에바 스스로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자신과 함께 있으면,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고 비웃을까 봐,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아이. 그래서 몰래 숨어서 먹고, 몰래 아파하고, 몰래 울며 슬퍼하던 아주 많이 외로웠던 아이.

분명 누군가는 에바를 보며 평가를 하고 속으로나마 조롱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그들 또한 내가 평가를 한다면 똑같이 누군가에게 조롱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또 그런 세계에서 산다는 것을.

자신의 뚱뚱한 외모 때문에 스스로를 위축시켰던 에바에게, 이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 남자친구 "미헬"과 단짝인 "프란치스카"가 생기면서 에바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에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 주고 받아들여준다.

에바는 자신의 아버지, 미헬의 형 등등 자신의 몸을 평가하고 툭툭 말을 뱉는 사람들과 미헬이나 프란치스카같이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겪으며, 물론 상처도 받지만 스스로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밟아 나아가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점점 바라보기 시작한다.

뚱뚱하기는 하지만, 마릴린 먼로와 같은 긴 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반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부당한 상황에 말을 직접 꺼낼 줄 아는 똑똑하고 착한 친구라는, 남들이 꽤나 부러워할 수 있는 자신의 진가를 세상에 꺼내 보일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에바는, 하나의 가치 안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세계에서 벗어나, 거울 속의 나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미헬과 프란치스카의 말도, 태도도, 그녀에겐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참 받아들이고 싶어진 선택이었다. "도대체 왜 나를 좋아하는 걸까?" 어쩌면 에바가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을 나아가게 된 건, 에바 스스로 역시 그런 나 자신을 좋아하고 싶어서 했던 선택이었으리라.

그래서 에바는 자신을 '여름날' 같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감춰지지 않는 나의 존재.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녹아내린, 그 속의 진짜 나.




"내가 평가받지 않으려면 나 자신부터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지 말아야지."


내가 스물다섯 일 때 학교에서 뵀던 뮤지컬 교수님은 야외수업 때 그려낸 나의 나무 그림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작고, 여리고, 화폭의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던 나무. 그 작은 나무 그림은 나의 거울이었다.

배우는 평가받는 직업이라는 말과 함께 평가를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온 나에게는, 그 말이 어찌나 씁쓸하게 들렸던지. 그 시절의 나는 차오르던 깊은 슬픔을 습관처럼 눌러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때 교수님의 그 말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자라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꽤 많이 달라졌거든.

물론 6~7년 전 평가의 세상에서 살던 그때만치 내 몸은 마르진 못하지만, 나 역시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결국 그 마음을 받아들였으니까. 그게 나의 변화였던 듯하다.

참 여름날 같고, 거울 같다.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턱끝에 맺힌 땀처럼, 태양빛처럼 들켜버리는 나.

그러니까 그 여름의 눈부심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것도 내가 쓴 글 중 노출이 잘 안되서 재업로드해본다. (우르르 올린 게 문제였나봐.)

생각난 김에, 그 날 이후 종종 한번씩 그리는 나무 그림을 바꿔봤다. 그 작고 여렸던 나무가 7년만에 정말 많이 컸어. 곧 벚꽃 필 계절이니까 더 예쁘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헤헤.





어제 마롱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만히 생각을 했는데, 역시 조금 준비를 하고 나서 프랑스로 갈 생각을 하는 게 맞나? 나만 특별해지지 않는 곳에서 나만의 고유성을 찾고, 각자가 존중받는 곳에서 오롯이 나 자신을 누리는 걸 추구해야 할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