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손해잖아, 아프지 말기

<언어의 온도> with Audio

by 도한솔 I Solar

이기주 <언어의 온도> '더 아픈 사람' p.18~19


<언어의 온도> 낭독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어린 손자에게 할머니가 알려 주려고 한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니었을까?]




사람의 말은 돈이 들지 않는다. 말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꽃이 될 수도,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칭찬과 다정은 꽃 한 송이가 될 수도,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주는 꽃다발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반드시 꽃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기에 그 말을 아끼면서 살 때도, 혹은 듣더라도 스쳐지날 때가 많다.

그러나 말로 꽂히는 비수는, 작은 비수든 큰 비수든, 꽂히면 아프다. 그리고 그 비수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망가지고 결국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남긴 흉터는, 기억에서 사라지기가 너무나 어려워진다.


언어의 온도를 다시 읽으며 유난히 19페이지를 매만졌던 이유였다.


지난날의 나는 몸이 무너진 상태에서,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시절들을 통과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통증, 침묵, 그리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어떻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지에 대한 전신의 기억이다.


"해야 하니까",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은 마취제처럼 꽂혀왔지만 결국 나 자신의 무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가 지난날 몸으로 겪고, 몸의 소리를 듣고, 몸들을 보며 그 끝에 깨달은 건, 결국 어느 누구나,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말'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 앞에서 조심해진다.

말을 할 때도, 들을 때도. 너무 많이 아파봤던 나는 누군가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의 단어를 가졌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행복한 거짓,
불행한 진실 중
무엇을 듣고 싶나요?"


그 대화카드 한 장이 주는 질문에, 단언컨대 불행한 진실을 고르고 행복을 위해 진실을 품고 앞을 나아가길 선택했던 나이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겐 진실이 주는 무게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저주와 같을 테니.


다만 아픈 게 당연한 게 예술인가,

직업이 그렇고,

세상과 삶이 원래 그런 것인가.


아니. 나는 아니라는 결론을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 몸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감탄은 유효하지 않으니까. 자신 역시 부상과 싸우셨던 무용수 출신의 필라테스 선생님과 아내 분도, 도수치료 자매 선생님들도 모두가 나에게 말했다.


보이는 기술이나 외모가 다가 아니라 지속이 가능하지 않다면 노래도, 춤도, 연기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냥 계속 부상을 입다가 끝엔 몸과 마음 모두가 아픈 사람으로 남게 될 뿐.


아픈 건 감동도,

훈장도,

증명도 될 수 없다고.


"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안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건넨 그 말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 말은 "아픈 사람은 더 잘 배려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면서, 동시에 "아픈 사람은 더 쉽게 무너진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 스스로 나 자신에게도 꽃을 선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나의 말은 비수가 아닌, 무늬로 남을 말을 건넬 줄 아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누군가의 삶이 언젠가는 무너질 위험한 조형이 아닌, 존재로서 오래갈 수 있길 바라기에.

"아프지만 말아요!"


아프면 정말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아는, 나만의 언어의 열기를 웃으며 건네본다. 원래 부드럽고 따뜻하고 느린 쉼을 알아야 삶이 충족되는 걸.

어느 누구든 꽃이 예쁜 걸 알잖아. :)



제. 발. 다들 몸도 마음도 과잉 사용, 과몰입하지 말고, 아프면 병원 가고, 미래를 위해 보험 들어놓읍시다.

오늘 배운 교훈은, 세상 뭐가 됐든 절대 망가지고 끝을 볼 때까지 기다리지 말란 것입니다, 후회해용.

3년째(다시 쓰는 시점부터 4년째) 통증 전문가라서 아는 중 (ㅎ;)




1년전 썼던 글이고 브런치 스토리 열면서 초반에 와르르 올린 글중 하나인데 노출이 너무 안되서 재업로드해본다. 이 글은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모두 담아냈거든. 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나도 과몰입, 과로하곤 하는데, 그럼 이제 몸에서 신호가 바로 와. 위험하니까 그만 좀 하라고.

그럼 좀 조절하지, 아프면 진짜 손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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