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을 통과한 사람만이 다시 선택하는 길
Ron "누가 네 이름을 그 잔에 넣었든... 내 생각엔... 널 죽이려고 그런 것 같아."
“Whoever put your name in that goblet—I—I reckon they’re trying to do you in!”
Harry "이제야 알았냐? 참 오래도 걸렸다. ...됐어. 잊어버려."
"Caught on, have you? Took you long enough. ...It's okay. Forget it."
-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 해리포터와 불의 잔 (4권)
연계 에세이 : 성경 <마태복음> 26:31-35
연태복음> 26:31-35 마태복음> 26:31-35
론 위즐리. 주인공 삼총사 중 해리가 영웅이고 헤르미온느가 해답이라면, 론은 그 사이를 연결하는 '심장(Heart)'이자 '인간성(Humanity)' 그 자체인 인물이다. 론은 인간적이고 허술한 매력 덕분에 팬이 많은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짜증을 유발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론을 이토록 애정과 미움을 동시에 품으며 그를 바라보게 됐으려나.
그건 아마도, 론이 가장 우리 인간과 닮은 모습이었기 때문일거다.
론은 가난한 집에서는 잘난 형들에게 치여서 항상 물려받은 낡은 옷을 입어야 했고, 학교에서는 살아남은 아이인 해리의 옆에 서야 하는 입장이었다. 오죽하면 1학년인 어린 론이 본 소망의 거울(Mirror of Erised)에서 비친 모습이 퀴디치 팀의 주장이고 온갖 영광을 혼자 독차지한 모습이었다는 건, 그의 평생의 한이 '2인자라는 열등감'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평범함 때문에 론은 친구인 해리가 갖지 못한 따뜻하고 온전한 가정의 온기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해리에게 마법 세계의 상식을 가르쳐주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주는 위즐리 부인의 따뜻함을 연결해 준 건 결국 론. 책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마법 세계의 가족들의 삶이라는 놀라운 평범함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알게 해주는 매개체.
그리고 론이 괜히 용기의 기숙사인 그리핀도르에 들어간 게 아니거든. 1편 <마법사의 돌>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체스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장면은, 론이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담대한 수를 내던지려면 두려움을 뛰어넘어야하거든.
헌데, 그런 론에게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면, 그 모든 게 평범한 사람이기에 가지는 열등감과 질투랄까. 4권 <불의 잔>이야말로 론의 열등감을 아주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왜 항상 너야?"
론은 자기가 해리의 단짝으로서 충분히 충성했다고 믿었지만, 해리가 (비록 론의 오해지만) 자신을 따돌리고 불의 잔에 규칙을 어기고 이름을 넣어 영웅이 되려 했다고 느낀 순간, '나는 해리 옆의 들러리일 뿐인가? 난 앞으로 계속 해리포터 옆의 걔로 지내야 해?'라며 자아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진 거다.
또래 집단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서로를 향한 비교 심리조차 웃음과 의리로 넘기곤 했던 론. 하지만 '불의 잔'이라는 거대한 상징 앞에서 그 덮개가 날아가 버린 거다.
이건, 전에 내가 마태복음 26절 에세이에서도 썼던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의 체포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던 것과 비슷하다. 나 자신의 초라함을 견디지 못해 관계를 끊어버리는 선택이니까.
재밌는 건 이 갈등이 풀리는 방식이 론은 해리의 설명을 듣고 화를 푼 게 아니라는 것. 해리가 거대한 용 앞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한 후, 자기 인식이 변한 론이 깨달은 거지. 론이 먼저 다가가서 "누군가 이름을 넣은 게 분명해"라고 말하며 사과하는 장면은, 자신의 질투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아주 겸손하면서도 용기 있는 복귀이다.
헌데 론은 또다시 마지막 권인 <죽음의 성물>에서, 몇 주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무 진전이 없는 무력한 상황에서, 계속 해서 목에 호크룩스를 걸고 있노라니, 그 안에서 부정적인 환영(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조롱)들과 마주하게 되고, 결국 론은 내면의 가장 비겁한 자아가 내는 소리에 휩쓸려, 또다시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배신하게 된다.
"어차피 나는 여기서 필요 없잖아!"
결국 또다시 자아의 임계점을 넘어버렸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시몬 베드로가 '나'를 살리기 위해 '너'를 버렸고, 론은 '나'의 가치를 찾지 못해 '우리'를 버렸다. 그게 두려움 때문이든, 내면의 열등감 때문이든, 결과적으로 둘 다 "나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환상이 깨지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
그리고 나서 떠난 것보다 돌아온 게 더 어려운 선택인 이유가, 수치심(Shame) 때문이다. 단순히 "미안해"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박살 난 자기 객관화를 견디며 기어들어 오는 거라서 그렇거든.
근데도 론은 돌아온다. 자기 안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직면했으니까. 그리고는 진심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빛이 되어 그를 이끌고, 론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뒤흔든 내면의 무의식인 그 호크룩스를 파괴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불의 잔>에서 쭈뼛거리며 상황만 설명했던 론이, <죽음의 성물>편에선 드디어 직설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고백해본다. 마음은 바로 돌아섰지만, 돌아올 방법(길)을 몰라 방황했던 론의 고통은, 시몬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심히 통곡하며 즉시 후회했던 심정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때 해리는 론을 너무 늦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리는 알거든.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도, 해리도 외로움과 공포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인간의 존재로서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인배로서의 용서를 한다.
관계는 완벽함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깨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과정이니까. 그러니 예수님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는다니까. (물론 헤르미온느가 죽일 듯이 패고 난리나긴 하지만 해리가 오히려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베드로가 되고 론이 된다. 호기롭게 장담했다가, 상황의 압박이나 스스로의 못난 점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치고 도망친다. 결국 론 위즐리는 완벽한 성인이나 영웅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결국 옳은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돌려놓는 우리 인간들의 초상화거든.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이 가능하게 하는 건 외부의 지도가 아니라, 내면에서 다시 켜진 연결의 의지라는 걸, 평범함의 가치를 아는 론만이 알릴 수 있는 일이었어.
그러니까 해리는 론을 평가하지 않고, 돌아온 선택 그 자체를 본 거야.
Ron "미안해. 내가 떠나서 정말 미안해. 내가 정말... 내가..."
"I’m sorry. I’m sorry I left. I know I was a—a—"
Harry "오늘 밤 일로 충분히 갚았어. 검을 찾아오고, 로켓을 없애고, 내 목숨을 구했잖아"
"You’ve sort of made up for it tonight. Getting the sword. Finishing off the locket. Saving my life.""
Ron "떠나자마자 바로 돌아오고 싶었어. 하지만 너희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어."
"I wanted to come back the minute I’d left, but I didn’t know how to find you."
-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7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