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헌신, 스스로가 체스말이 된 플레이어

<용의자 X의 헌신>

by 도한솔 I Solar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이시가미 테츠야의 말.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맹점을
살짝 찔러 주는 것뿐이죠.
예를 들면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든가 말이죠.]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이 동반된다."


올해 두 번이나 각기 다른 단골 사장님들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올해 반드시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되짚어 보기 위해 들었던 순간들 인지도. 그러나 요즘처럼 순수하지 못한 시대에 들어서서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처럼 어렵고 힘든 말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고, 끝없이 경계하며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세상. 그래서 이 <용의자 X의 헌신>은 표지와 중반부 까지는 추리와 스릴러를 동반한 책처럼 읽힌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희생’과 ‘침묵’, 그리고 진심이란 이름의 비극적인 설계도에 자신을 가둬둔 이시가미라는 한 천재의 어리석고도 비논리적인 헌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호스티스 출신의 하나오카 야스코와 그녀의 딸 미사토, 그 둘이 저지른 살인 사건. 이시가미는 그들에게 논리적인 사고를 토대로 한 정교한 설계로 그 사건에서 벗어나게끔 만드려 한다.


결국 이시가미는 자기를 위해 침묵하고, 또 누군가는 침묵한 이의 마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또 다른 함정에 당했다고 믿는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사이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마지막 순간 너무 슬픈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이시가미는 끝의 끝까지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정을 ‘문제 해결’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읽는 이로서는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얼마나 순수하고도 처절한 야스코를 향한 감정이 고요함 속에 흐르고 있었는지를.
그러니 그 사랑은 실패가 아니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독자로서 나는 기꺼이 알아차렸다.

대학시절 이시가미의 동문이던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그는 이시가미를 동경해 왔고 오랜만에 마주한 그를 반가워하지만, 동시에 경찰과 같은 예리한 촉으로 그가 이 사건에 연관이 되어있음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가 숨겨둔 함정들을 하나하나 찾아낸다.

그리고 타인이라면 아예 보지 못할 무언가의 사소함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발견한다. 그 복선은 초반의, 친구인 형사 쿠사나기와 체스를 둘 때 그와 나눈 대화에서 드러난다.

[배반은 기사도 정신에 위배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억지만 쓰지 말고 논리적으로 전황을 살펴봐. 자네는 말을 한 번밖에 움직일 수 없어. 게다가 자네가 움직일 수 있는 말은 극히 한정되어 있고, 어느 것을 움직여도 나의 다음 수를 막을 순 없어. 내가 나이트를 움직이면 체크메이트야.]

그리고 유카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체스판 안에서,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을 다루는 내내 상대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기에 침묵조차 그가 예측한 수 안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모든 수를 읽고도 그저 말하지 않는 구조. 그게 바로 유카와의 진정한 언어이다.

"사람이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하는 거야.
단, 해답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치고 말이야."

그렇기에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동경과 애정 사이의 심리전 속에서도, 안타까운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가, 결국 야스코에게 그녀와 그녀의 딸을 향한 이시가미의 헌신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단 하나다.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이시가미가 이런 일을 벌인 보람이 없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 답은 맞지 않기 때문에.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글 쓰는 비결을 세 가지를 이야기하며 말했다.


"독자는 속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억지로 속이려 하면 금세 들킨다"


사건은 흥미를 주지만, 인물은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하기에 인물이 먼저이며, 반전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익숙한 장면 속의 ‘이질감’에서 시작되기에, 치밀한 구조가 아닌 일상의 틈에서 복선을 찾으며, 현실감 있는 이야기일수록 비현실적인 전개도 믿게 만들기에 현실을 살라고.


결국 모든 것은 '작은 의심'에서 시작되어 버리니까. 겉보기엔 기하학 문제 같지만 알고 보면 함수 문제인 것처럼, 그 한 꺼풀을 걷어내면 진짜가 드러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을 움직이지 않았다. 끝까지 침묵하며, 스스로를 체스판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게 유카와가 말하는 나이트였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톱니바퀴란 없으며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톱니바퀴 자신이야,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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