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도시에서 치유를 시작하다
나는 2012년 12월 6일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암담한 현실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이미 나의 몸은 그때까지 버팅기고 견뎌낸 것 만해도 대견한 것인데 나는 너무나 끔찍하고 두려워했다.
수 십 년을 질풍노도의 삶을 살면서 방치하고 내동댕이치고 아끼지 않았던 몸이 주인에게 주는 벌이고 경고였음을 알지 못했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유전적 요인과 불규칙한 생활로 당뇨환자임을 알게 되었다. 임신성 당뇨가 아닌 그저 당뇨환자임을 그때 알게 된 것이다. 더 젊은 시절 병원에서 당뇨가 높다는 가끔 어렴풋한 기억이 있긴 하지만, 내가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은 그때 알았고, 큰 아이를 낳기까지 인슐린을 맞고 병원에 두 번 정도 입원하고 온갖 검사는 다 하고 3주 빨리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둘째 아이도 그렇게 나았다. 둘 다 노산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두도 못 낼 35살, 41살에 정신을 차렸다.
세상이 어느 날, 그렇게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두 아이가 주는 새로운 삶은 서서히 나의 인생을 통째로 다르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너무 느리게 알게 되었다.
나는 슬펐고, 속상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을
그리고,
다음날 나는 통영으로 암과 더불어 여행을 떠났다. 이미 예정된 여행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집안에서 우울하게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같이 떠난 지인들의 용기와 가족들의 이해로 눈이 오는 아침 통영으로 겨울여행,
2박 3일의 통영은 고통도 절망도 주지 않고 단지, 당황스러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함께 떠난 지인들도 슬픔보다는 치유를 위해 편안하게 웃고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추억을 남겼다.
눈이 무척이나 왔던 겨울, 남쪽의 하늘도 바다도 눈으로 하얗게 우리를 반기고 가는 버스에서 살아서 하늘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기도했다. 간절하게,
그리고,
2013년 12월 10일 국립암센터에 입원하였다.
12월 12일 40센티의 대장은 나를 살리고 나의 곁을 떠났다. 인체는 정말 신비스럽다.
몸의 40센티의 장기가 없어졌는데도 잘 먹고 소화도 잘되고 있다니, 눈물이 난다.
그날부터 암환자가 되었고, 2기 말이라는 판정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두 번째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때서야 환자라는 사실을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가슴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마음이 속상하고,
나의 가족에게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