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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아래 2

청춘이었다

by 솔바람

대학으로 가는 길 사거리부터 호떡집, 다방, 서점, 경양식 집들이 가난한 내 주머니를 유혹했다. 그곳을 비집고, 헤치면서 쭉 걷다 보면 도로 중앙 끝 정문에 닿는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방향을 틀면 조그마한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는 터널이었을까? 그곳이,


낯선 공간의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이미 존재하고 있듯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눈빛은 세상의 모든 호기심을 단번에 빨아들이기에 너무 충분하다.

마침내 길고 높은 대학의 담벼락조차 나를 환대하고, 마치 무거운 땅 위로 겨우 올라오는 들풀을 바람에 흩날리지 않도록 품듯 나를 품었다.


그곳에 나의 포장마차가 생겼다.


‘타는 술 마름으로’


밤이 피어오르면, 낭만들이 모여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들에게 안주가 되어 씹혔다. 집단지성集團知性의 상징인 대학의 담을 빽으로 둔 청춘 포장마차들.

담장 밑 왼쪽 곁에 ‘60킬로의 몸무게를 위해 600그램을 파는’ 칵테일 포장마차가 있다. 그곳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좁은 간이의자에 앉아 마치 값비싼 스탠드바에서 한잔하듯 맘껏 멋을 낸다. 꿈이 있는 이미지들이 온통 왁자지껄하게 고급스러운 포장마차를 만들어 주었다.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그때 인연으로 친구가 된 영화를 꿈꾸던 사람들은 나의 작은 자취방을 감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검은 페인트칠 한 내 방, 그 방을 나갈 때 다시 원상복귀를 하는 바람에 생고생을 했다. 그리고 우리 포장마차를 지나 골목 끄트머리쯤 낯선 청년의 포장마차인,


‘짜라투스트라도 여기서 취했다.’


가 있다. 낯선 이방인끼리 모인 세대의 포장마차는 매일 저녁만 되면 청춘들이 모인다. 다들, 심각하거나 즐겁거나 아니면 어디서 외상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하면서 그 좁은 골목에는 흐릿하지만 선명한 조명이 일제히 켜진다.

‘실존주의’가 어떤 사상인지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한 지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의 존재를 찬양했던 나날이다. 하늘의 별빛만이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 만나게 한 것이라 믿었다. 스무 세 살이 만들어 낸 무모한 용기는 그렇게 그곳에 있게 했다.


비상 착륙한 ‘타는 술마름으로’는 매일 온갖 것을 구웠다. 꼼장어도 전어도 굽고, 사람들 틈에서 외로운 여백도 구웠다. 굽다 보니 사람들은 허름한 이곳에서 매일 밤 시를 읽고, 목청 나가게 노래를 부르고, 서슬 푸른 군부독재 시대를 향한 분노를 토해냈다. 젊은 우리는 민주주의가 동트는 새벽에 올 것 같아, 종종 아침 태양을 맞이했다. ‘타는 술 마름’은 외로움을 집어 삼키기도 하고, 저항의 시그널도 보냈다.


기억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아마도 내 기억의 조작일 것이다. 왜냐하면 세월은 섬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는 술 마름으로’ 안은 늘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은 내가 장을 보고 요리하고 함께한 동생들은 손님인 지인들을 맞이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뒷마무리도 함께했다. 돌아갈 수 없는 ‘청춘 예찬’과 젊음의 시간인 낭만만이 가득한 그 시간, 영원할 수 없는 젊음은 불안도 아쉬움도 아닌 인생이었다.


그러는 사이 운영은 점점 힘들어졌다. 그들은 가난했고, 나는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가 지닌 어수선하고 아찔한 이야기만을 선택했다.

포장마차도 문을 닫을 때가 되었을 때, 외상값이 쌓이게 되었고 결국 받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무일푼이 된 나는, 졸업식 날 꽃을 팔기도 하고, 메리크리스마스 날 초를 팔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 장사를 해서 번 돈은 광안리 앞 바다에 던졌다.


어둠과 함께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소주, 그것으로 우리들의 아침은 반듯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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