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같은 곳, 부엌

by 솔바람

부엌이 어느 날부터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의 몸처럼 하나씩 벗겨지고 갈라지고, 서랍장들이 하나씩 삐꺽거리더니 제대로 여닫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부엌이 꼭 나를 보는 듯했다. 급기야 그것이 꼴도 보기 싫어졌고,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삶을 위한 변화, 우리는 부엌에다 그 변화를 시도했다.

뭐랄까? 이것마저 안 하면 내가 살 수 없을 거라는 뭔가 막연하지만, 기필코 해야만 하는 그런 의식 같은 대상을 부엌으로 여겼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부터 나는 부엌에 신경이 쓰였지만 망설이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전세를 오래 살다 보니 자기 집에 살면서 전세처럼 사는, 가꾸거나 주인의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아프니, 이제는 안 하면 안 되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부엌을 바꾸는 일이 나를 낫게 해 줄 것 같고, 집안의 우울한 분위기를 다시 살려내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모든 일들이 말끔히 사라져서 행복해질 것 같았다.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서 위안받는 행위 중 하나를 그렇게 선택하고 이유를 대고, 도시에서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를 바꾸거나, 사거나, 사치 아닌 사치로 선택한 변명 같은 곳.

부엌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기대고 싶은 곳, 바로 부엌.


결혼하면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래도 대견한 것은 내 손으로 아이들 밥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밥과 반찬, 온갖 간식들, 될 수 있으면 우리 농산물, 친환경 식재료로 아이들을 키운 나는 부엌이 소중했다. 어떤 날은 하루 간식까지 포함해서 여섯 끼를 할 때도 많았고, 큰 아이가 어릴 적에는 17평 좁은 집에 하루 32명의 식사를 만든 적도 있었다. 행복한 시간들이 부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 집 부엌은 사람들이 소통하면서 보낸 곳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이곳에서 수다로 아이들의 교육을 이야기했고, 수다 떨기로 세상과 만난 곳이 부엌이다.

늘 무언가를 만들어서 가족과 이웃들과 정답게 이야기했던 곳이 부엌인 만큼,

나는 부엌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이것저것 알아보다 우리 부부는 부엌을 원목으로 바꾸기로 했다. 언젠가는 시골로 가게 되면 꿈꾸었던 나무로 된 부엌을 과감하게 만들기로 했다. 하이그로시가 어찌 내 몸에게 미안함을 주는 것 같아, 큰 결심을 했다.


시골로 가는 것이 어렵다면 부엌이라도 원목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해.

이제 우리는 부엌에서 자연을 이야기하고, 나의 치유를 말할 것이다.

설렘이 가득한 주방을 만들고, 치유를 할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부엌을 고치고, 다시 가스레인지를 없애고 전기레인지로 교체하고 정수기에서 알칼리 이온수기로 바꾸면서 우리는 애써 이 곳 부엌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 것에 대한 이유를 달았다.

괜찮아, 건강해질 거야.


나에게 부엌은 매우 중요한 곳이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공간, 그리고 내가 주방일을 그만둘 수 없는 성향의 사람.


아내,


엄마,


여자,


라는 사실이 지금의 나임을, 놓치지 말아야 할 삶의 의미임을, 절실히 인식한다.

결국, 자신의 심장이 강해져야 살 수 있다.


나를 위해서 맛난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엄마이자 아내인 것을 공감한다.


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야 이 힘든 시간들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부엌은 남편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덜 의지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나를 위한 밥을 짓고 싶다는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나보다 가족이 우선이 되는 것은 어찔할 수 없는 것 같다.

다 만들어 놓고 지내는 동안, 부엌은 어느새 낯설고 이상적인 곳이 아닌 그냥 부엌인 것을

새삼 느낀다.

밥상의 현실은, 말타툼, 잘 안 먹는 아이들과 온갖 씨름을 하면서 내지르는 잔소리, 밥을 먹는 건지 서로의 갈등을 먹는 건지도 모를 나의 원목 부엌은 오늘도 숨을 쉬려고 애쓴다.


그래도 믿는다.

밥상의 힘은 우리 가족을 잘 성장시킬 거고, 건강하게 만들 거라는 것을



영화 '우리는 사랑일까'를 보면서

그곳에 나오는 부엌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