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유에 대한 변명

by 솔바람

마랑이 하는 요가 교실에 정말 오랜만에 들렀다. 따뜻한 배려로 오늘 몸을 푸는데, 기분이 좋았다.

한 달에 두 번밖에 할 수 없구나.

나는 사실, 시간을 정해두고, 일정하게 다니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직장생활도 그렇게 썩 잘한 것 같지가 않다. 늘 지각이 일쑤였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이야, 우리 부부가 직접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 약간의 자유가 보장되긴 하지만 정말 나야말로, 직장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임을 진즉에 알았어야 했고, 인정해야 했다.

물론, 이것저것 따지면서 밥 먹고 살 수는 없지만, 여하튼 스스로 작업실을 가지고 일종의 자영업자가 되었기에 망정이지, 이날 여태껏 직장인이었다면, 아니, 직장인으로 살 수 없었을 것 같다.

사람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체질에 맞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것을 거스르거나, 억지를 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나는 어디서 탈이 났을까?

사무실과 집안일을 공존하면서부터 탈이 났을 것 같다. 그때부터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과 공간의 경계 없음.

일하는 머리와 아이 키우는 머리, 일하는 마음과 아이를 포함한 살림하는 마음이 달라서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작업을 시작하면서 경계가 무너지고, 질서가 무너지면서 정말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것 같다. 어떤 것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만족보다는 여기저기서 욕먹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꼬여 만 갔을 때 폭발했던 것 아닌가. 성격적으로 욕먹기 싫어하고 일하면서 완벽한 칭찬을 바라는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이중적인 자아에서 오는 것 같다.

즉, 일하는 여성으로의 꿈은 참으로 자본주의적이고, 욕심이 크고, 사회적이었는데,

집에서 살림하는 주부로서의 꿈은 갑자기 시골스럽고, 친환경적이고, 느리게 살고 싶어 지고, 없이 사는 것이 좋아지고, 시골로 가는 꿈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려고 하면서 나의 의식 세계는 다르게 엇나가고 있었다.

이 두 가지에서 혼돈과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같다. 언제나 이상주의적이고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살아 온 젊은 나날의 모습만 마음이 알아차리면서 살았다. 사실은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모른체 하면서 나이 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 나의 본 모습이 보였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아픈 것이 다 이 탓은 아니다.


다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의심이라도 생기면 드러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나씩, 꺼내서 버리고 싶다.

더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뭔가 안절부절 못하다는 것이다. 어찌 이리 못났는지, 정작 건강할 때는 눕고 싶고, 게으르고, 나밖에 모르면서 살아왔는데,


진짜 누워 있으니, 세상이 돌아섰다.

사람은 저마다 사는 것에 집착한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인 일과 꿈을 위해 잠시나마 모든 것을 걸고라도 도전하려 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 꼭 그렇게만 살아야 하는가?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면 안 될까?

그러면 혹시라도 덜 아프거나, 암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몸이 이렇게 되니, 멘탈도 저절로 무너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일기를 쓰게 된 동기도 내가 정신병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치유의 방법이 글쓰기인 것을 새삼 느낀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몸이 무너졌을 때, 정신이 끝까지 가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늘은 가장 소중하고 후회 없을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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