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무탈하게 자라났다. 과연, 그럴까?
14살이 되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고와 걱정으로 전쟁을 치렀다.
매일 밥상에서 밥먹으라는 잔소리, 잠시 한눈팔면 다치지 않은 날 없는 하루가
십사 년이 지나고 있다.
아들 녀석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다행이다 싶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태양이는 자주 다쳤다.
14살의 소란스러운 아이가 집이 아닌
시골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 글은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내는 아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걱정이자,
잔소리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태양이가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서 집 밖을 나갈 정도가 되었다. 마음 한편이 짠하면서 밀려오는 것이 애잔하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렇게 일찍 생활을 시작할 줄 몰랐다. 우리 둘 다 집이 아닌 다른 곳,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계시지만, 아직은 어린아이를 밖으로 보내니 이게 맞는지 싶을 때가 있다.
아이가 말은 안 했지만, 그 시절 잠자리가 바뀌면 고픈 것이 엄마 품일 텐데 기특하기도 하면서, 마음은 더 단단하게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산골에 있는 학교는 넓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사춘기를 시골에서 보내는 아들은 오늘 행복하리라 믿는다.
다만, 오늘 내가 그리울까? 많이 보고 싶다.
집이란 일상日常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젠 시골학교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할 텐데, 그곳을 집이라고 하지 않는 것 보면 집이란, 또 다른 의미가 우리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부모가 있는 곳, 가족이 사는 곳, 언제나 가면 그곳에 조용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를 기다려 주는 곳, 집.
누가 가르쳐 주지 않지만, 그곳은 집보다 기숙사고 매일매일 일상을 보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집은 이곳, 집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데, 어찌 쯧쯧"라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
그러게, 그 말이 맞는 말이고,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아이를 시골로, 그것도 산골로 보내다니, 맙소사~
태양아, 집밖에는 뭐가 있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부모가 즐거워야 아이도 잘 지낸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태양이에게 지금의 집 밖은 아마 달콤한 아이스크림일 수 있을 거다.
달콤해서 시원한 곳, 심심하면서 진하게 놀 수 있는 터가 그곳이라 믿는다.
생각해 보니, 나도 12살 무렵, 엄마 품을 떠나 서울에 계신 친할머니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이후 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지낸 것은 아주 짧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소중한 아이도 내 품을 떠나서 살기 시작했다.
떨리는 가슴으로 잠시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기도한다.
보고싶다, 아무 일 없이 잘 자라기를, 외로움도 잘 견디고... 아, 정말 진심은 무얼까?
태양이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자라나기를 바랄 뿐이다.
시대가 달라졌고, 가족에 대한 가족관도 달라져서 이렇게 나는 의연한 척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집 떠난 시절이 외로웠다. 정이 그리웠다.
이제 학교는 태양이의 새로운 집이 될 것이다. 산소 같은 이곳을 떠나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첫 순간, 조금씩 자신만의 서투른 친구를 만나고, 어설픈 외로움과도, 아플 때 곁에 없는 가족들이 보고 싶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헤매는 시간,
그 몫이 유전의 그물에서 벗어나 오로지 아이 자신의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집 밖에서 집이 그리운 시간은 있지만, 철이 들지 않은 시간 안에는 집은 늘 그 자리에 부모와 형제가 있어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가족은 살아가면서 가장 작은 틀이지만 어쩌면 가장 큰 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철이 드는 나이가 될 것 같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야 지키고 싶은 가족이 생겼는데, 아이들은 이제 나가도 되는 집이 되었다.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