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첫걸음
큰 아이와 둘째는 나이 차이가 여섯 살 난다. 나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다르게 키운 것은 확실한데 큰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첫째를 키우고 둘째를 키우면 무언가 세련되고 아는 것도 많아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러지를 못하다.
당연히 첫째를 낳는 과정은 힘이 너무나 들었다. 아이를 가지면서 외할머니로부터 유전적으로 당뇨병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인슐린을 10개월간 맞으면서 아이를 낳았다. 자신의 몸에 매일 매일 인슐린 주사를 놓을 때, 가난한 문간방 너머 꼬물거리는 희망보다는 아침마다 남편에게 의존해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 나와 나의 아기가 불쌍했다.
둘째 아이는 열 달 동안 아침마다 어떤 의식을 치르듯 힘겹게 내 몸에 내가 직접 주삿바늘을 찔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눈물과 두려움으로 떨었던 것 같다. 이 순간 고맙게도 잘 성장하고 있지만, 다시 아이를 갖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첫 아이 때 3주 빨리 분만해야 정상분만을 한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유도분만실에 들어갔다.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유도분만은 애만 쓰고 결국은 제왕절개를 해서 낳는다는 보호자들의 불안한 말들을 듣고 그만 급하게 제안을 해서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큰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시간은 약이다. 잊는다.
겁도 없이 태양이도 똑같은 절차를 걸쳐서 태어났다.
지랄 총량의 법칙
6학년 1학기까지 운동만 했던 태양이는 단순하다. 매일 2시간씩 운동장에서 7여 년간 운동을 하던 태양이가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이 이렇게 놀 게 많은 지 새삼 깨달았다.
그해 운동장을 떠난 태양이가 처음 마주 선 곳은 필리핀에 있는 간디학교 캠프였다. 한 달간의 캠프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내면이 뭐랄까? 새장 안에 갇혀 있던 새가 세상 밖으로 처음 나왔을 때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날갯짓하듯 아이도 숨돌릴 틈 없이 자신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사춘기 초입이 아니었나 싶다. 하루가 다르게 자신의 몸이 달라지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낯설고 이상한지 궁금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거칠어지는 듯하다 다시 조용해지고, 어느 날은 부모하고 자다가도 자신의 방에 들어가 혼자 잤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녀석의 방문이 닫혔다.
그런 태양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 그렇지 잠시 까먹고 있었구나.
큰 아이도 그 시기를 집에서 보내지 않았지만, 아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시기부터 잠잠했던 지랄 총량의 법칙을 어김없이 지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모습으로 아이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지는 다르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이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을 부모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안절부절 낯설게 이 상황을 맞이 하고있다.
지켜보는 것, 그리고 믿는 것, 자식을 믿고 기다리는 것 ...
자식 농사도 때를 기다려 정성을 다하는 것이 부모인것을 농부의 마음으로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까먹는다.
하늘의 빛과 바람과 비를 맞아야 자라난다는 것을 안다. 우리 부모가 우리를 키울 때처럼 그렇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