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봄이 서는 날

봄은 언제 시작되는가

by 허영회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봅니다. 동장군의 심술이 장난 아닙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매서운 추위가 있을 때, 입춘방을 거꾸로 붙여 봄 대신 추위가 들어온 것 같다고 농담합니다.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 '입춘 추위는 꿔서도 한다' 속담이 있는가 하면, '입춘 지나면 쇠뿔도 녹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절기는 기대와 아쉬움, 양면의 얼굴을 지닙니다.


숲해설가들은 절기에 민감합니다.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을 상대하다 보니, 바람결이 살짝 달라져도 햇살 각도가 바뀌어도, 생명들의 반응을 곧잘 알아챕니다. 특히 날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생명체로, 꽃을 찾아 헤매며 계절의 신호를 읽어냅니다. 계절의 매듭과 변화를 이야기하기 좋으니까, 24 절기를 기준으로 활동 프로그램을 짜기도 합니다. 그런데 24 절기 이름이 무색해질 때도 많습니다. 왜 이런 어긋남이 생길까요?


24 절기의 기준이 된 곳은 중국 화북지방, 황하 중·하류 평원입니다. 이 지역의 기후 변화를 관찰해 농사에 활용하기 위해 만든 역법이 바로 24 절기입니다. 대륙성 기후로 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기온과 강수량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여 절기를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반면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계절이 더디게 움직입니다. 같은 절기라도 우리가 체감하는 계절은 화북 지방보다 약 1~2주 정도 늦은 편이지요.


24 절기는 흔히 음력과 섞여 오해되지만, 사실은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양력'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양력 날짜와 매년 거의 비슷하게 맞아떨어지지요. 다만 고대인들의 일상은 음력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시계가 없던 시절 밤하늘의 달은 누구나 보기 쉬운 시계였기 때문입니다. 음력은 제사와 명절, 물때 같은 사회적 약속을 정하는 데 쓰였고, 24 절기는 씨를 뿌리고 거두는 농사 타이밍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농경사회임에도 우리 조상들은 ’ 음력‘을 기본으로, 태양력을 섞어 사용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음력은 디지털시계의 숫자이고, 절기는 계절과 맞는지를 확인하는 좌표였습니다


다시 입춘으로 돌아옵니다. 입춘의 입은 入일까요, 立일까요? 발음이 같으니 헷갈리기 좋은 데다 실제로 '봄에 들어간다'는 느낌으로 入을 떠올리기 쉽지요. 하지만 한자 원형을 따지면, 봄이 비로소 자기 자리에 서는 순간을 뜻합니다. 入은 이미 만들어진 것 안으로 들어가는 외부적인 움직임을 말하고, 立은 사람이 두 발로 서 있는 형상으로 서다· 임하다· 확립된다· 성립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즉, 立은 無에서 有로, 없던 기운이 자리를 잡아 똑바로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절이 어디선가 말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가 새로이 확립된다는 뜻입니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 모두 立을 쓰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입춘은 봄이 시작된다는 예보가 아니라, 봄의 질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선언입니다.


며칠 전, '설국' 여행 준비로 남편과 방한화를 사러 갔습니다. 결국 남편은 고집하던 캐주얼화를 샀습니다. 방수가 되는 방한화를 꼭 준비해야 된다고 해서 추가로 인터넷쇼핑을 했습니다. 같은 브랜드인데 가격대가 지나치게 싸다며 의아해하더니, 몇 번 신어보고는 바닥 쿠션이 다르답니다. 로고를 유심히 보고서 앞 글자 디자인이 다르다고 웃습니다. NIKE의 가짜 버전처럼 말이지요.


『언어의 온도』에 나오는 위폐 감별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가짜를 걸러내려면 진짜를 잘 알아야죠. 위폐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

자연을 공부하며 왜 그토록 헷갈렸는지 알 것 같습니다. 기본이 서 있지 않으면 비슷한 것들이 쉽게 섞입니다. 갈길은 멀고 마음은 바빠서 하나를 대충 알고 넘어가면, 다음은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기본을 세워야 다음이 헷갈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춘은 언제쯤일까요. 대지에서 봄의 기운이 처음 '서는' 순간입니다. 꽃이 피기 전, 생명들이 미세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는 그때, 숲은 이미 그 변화를 감지합니다. 입춘은 봄이 들어오는 날이 아니라, 봄이 비로소 자기 자리에 서는 날입니다. 우린 지금 입춘을 맞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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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갯버들(26.2.4일)

강아지털을 닮았다고 애칭이 버들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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