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꽃, 내 안의 할머니
수목원에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옆에 있던 지인이 “어쩜 털이 이리 고울까?” 하며 손을 뻗습니다. 저도 슬쩍 만져봅니다. 반지르르한 하얀 털이 짐승의 새끼 털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예전과 달리 올해는 할미꽃이 더 사무치게 합니다, 나를 ‘함미’라 부르는 손자가 생긴 뒤로, 할미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 호명이 되었습니다. 부르면 돌아보게 되는 이름 같은 것. 봄볕 바른 무덤가에서 만나는 할미꽃. 두 손녀에게 문전박대당하고 막내 손녀를 찾아가다 기력이 다해 죽은 곳에 피어났다는 꽃. 그 슬픈 전설을 밀어내려 해도 가슴이 저릿합니다. 이야기 속의 못된 손녀가 바로 제 모습이니까요.
감기몸살을 앓는 남편이 시원한 동태탕이 먹고 싶다며 주문합니다. 동태탕을 끓이면서 또 불쑥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제가 대책 없는 ‘손자 바보’가 된 후부터 할머니는 수시로 접속됩니다. 그때 할머니도 감기몸살이었을까요? 제게 동태탕을 끓여달라고 했던 그날 말입니다. 부모님은 도시로 이사를 하고 중학생이던 나는 할머니와 둘이 시골에 남아있을 때였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처음으로 부엌일을 시켰습니다. 생애 처음 만지는 생선의 미끈거림에 소름이 돋아가며 겨우 밥상을 차려냈지요. 국물을 떠서 맛을 보던 할머니가 왜 이리 쓰냐고 묻습니다. 우웩! 저 역시 한입 먹어보곤 쓴맛에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동태 쓸개까지 끓였던 것입니다.
“여자가 부엌 들어가길 그리 싫어하면 우짤라고 그러노?”
“고만 놔둬라. 지 팔자 지가 만들어 가니 싫다는 일 억지로 시키지 마라”
맏딸인데 부엌일을 죽자꾸나 싫어하는 제게 엄마는 꾸중과 걱정을 뒤섞습니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어야 할 할머니가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오죽하면 제게 동태탕을 끓여달라 했을까요.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었으면서 아픈 할머니가 시킨 동태탕이 그리 싫었을까? 제대로 물어서 정성껏 끓일 생각은 않고, 귀찮아서 얼른 뚝딱 해치울 생각만 했으니 그런 사달이 난 것이겠지요. 그때의 저는 전설 속 손녀와 무에 달랐을까요?
이제 할미꽃은 야생에서 보다 꽃집이나 정원에서 자주 봅니다. 꽃이 아름다워 남획이 된 데다 숲이 우거지며 양지도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화장 문화 확산으로 새로운 무덤도 늘지 않습니다. 할미꽃 학명은 풀사틸라(Pulsatilla koreana)로, 한국이 원산지이며 ‘종을 닮은 꽃’이란 뜻입니다. 서양인은 고개 숙인 모습에서 종을 보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허리 굽은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다른 편으로는 ‘백두옹’이라 불러 할아버지를 가리킵니다. 씨앗에 매달린 하얀 털뭉치가 노인의 백발같이 보였나 봅니다.
신라 시대 설총이 들려준 ‘화왕계’에서 할미꽃은 ‘백두옹’이라는 이름의 충신으로 등장합니다. 화려한 장미의 아첨에 마음을 빼앗긴 꽃의 왕에게, 허리 굽고 머리 허연 백두옹은 직언을 던집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입니다.” 선비들은 이 꽃을 꼿꼿한 할아버지의 기개로 읽었지만, 서민들은 굽은 허리와 백발에서 자식 뒷바라지에 지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별은 달라도 본질은 같습니다. 자애와 지혜, 사랑과 충언. 할미꽃의 백발은 세월이 빚어낸 선물입니다.
백두옹의 지혜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사랑만큼은 아끼지 않는 할미가 되고 싶습니다. 할머니가 되고서야 비로소 내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피가 내 몸속에 흘러 내리사랑으로 갚으라는 뜻인지, 손자에겐 눈먼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훈육은 모르겠고 오직 사랑 넘치는 할머니.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내 손자에게 고스란히 건네주려 합니다. 올봄, 할미꽃 앞에서 할머니와 제가 세월을 뛰어넘어 겹쳐집니다. 하얀 털이 매력인 할미꽃처럼 저도 그런 할머니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무덤가에 꼬부라진 할미꽃
꽃을 받쳐주는 포엽이 왕관처럼 빛나는...
건조한 곳에서 수분을 지키고 추위를 막는 다목적 털
비단털옷이 부끄러운 수줍은 할미
새치가 돋기 시작한 머리털
바람에 멀리 보내려면 길게 꽃대를 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