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격당했을까?
1.할배와 까마귀
두세 걸음 앞서가던 남편 머리 위로 까마귀가 돌진한다.
“까마귀가 왜 이래?”
깜짝 놀란 남편이 모자를 벗어들자 지나갔던 까마귀가 방향을 바꿔 다시 날아온다. 남편을 향해 위협하듯 빙글 낮게 돈다. 모자를 쥔 팔을 휘두르며 그곳을 벗어나자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맛집으로 소문난 국숫집으로 점심 먹으러 가던 길에서다. 주차 공간을 찾다가 길옆 생나무를 베어 쌓아 둔 곳에 차를 세웠다. 작은 쌈지공원이었는데 나무를 모조리 잘라버렸다. 아름드리 그루터기에 생기가 남아있어 선뜩하다. 착잡한 눈길로 훑어보자니 쓰러진 그늘막 위에서 까막까치가 요란스레 짖었다.
국수 나오기 기다리며 하는 말이 까마귀가 모자를 채가는 줄 알았단다. 뒤통수를 툭 치는 듯한 타격감에 비해 날갯짓 소리가 더 위력적이더란다. 손님이 줄을 서는 집이라 얘기보다 먹기에 집중해야 한다.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손님들끼리 불문율이라 할까.
식당을 나와 주차 장소로 가며 주변을 의식적으로 살핀다. 휑한 공원 옆 건물 이층 옥상 난간에서 까마귀는 비를 맞으며 우릴 보고 우짖는다. 아까 남편을 공격했던 까마귀인지. 부슬비에 우산이 없는 우리에게 또 달려들까 잽싸게 차에 탔다. 낙동강을 두고 동쪽은 아파트 숲인 부산시 북구이고, 서쪽은 김해시 대동면이다. 우리 집에서 화명대교를 건너면 10분 이내의 거리인데 시골 정경이 느껴지는 곳이다. 여기에도 개발 바람이 부나 보다.
집에 와서도 그 까마귀 행위가 뇌리에 감돈다. 사다리차로 까치둥지에 근접해 알을 관찰한 연구원이 까치에게 공격당했다는 글이 생각난다. 맞아, 보금자리를 잃은 것이다!
“거기 나무에 둥지가 있지 않았을까? 나무를 벤 사람이 남색 야구모자를 썼겠지? 당신이 하필 같은 색 모자를 쓴 거야...”
“짜식, 시력이 안 좋구먼!”
“뭐~ 제대로 본 셈이지. 난 공격 안 했잖아”
“아냐, 모자 벗은 잘생긴 모습을 보고는 죄송합니다 인사하러 돌아왔당께...”
까마귀에 당하고서 흰소리로 얼버무는 남편.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이 있었는지, 파괴된 터전을 까마귀는 언제까지 지킬까?
2.떠날 수가 없다
‘저놈이닷!’
걸어가는 뒤통수를 향해 발톱으로 내리꽂았다. 남자는 모자를 벗어들고 팔을 휘젓는다. 돌아서서 다시 일격을 가하려니 각도가 안 맞다. 빙글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다. 남자는 황급히 식당으로 사라졌다.
모자를 벗은 남자는 나무를 벤 놈과 비슷하긴 한데... 그날 경황이 없었기에 유사한 모자를 쓴 사람이라 일단 분노의 발차기를 날렸다.
보금자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봐야 했다. 알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나무 아래가 소란스럽다. 트럭에서 야구모자를 쓴 남자 몇 명이 내려 우리 동네를 빙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인다. 신경이 곤두서 품고 있던 알을 두고 집 밖으로 나와 살폈다.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이 일더니 이웃 작은 나무들이 넘어진다. 오~ 맙소사. 나무를 베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저 기계로 나무 자르는 걸 본 적이 있다.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게 일어나다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기계의 광포한 폭음에 묻혀버린다.
‘내 알이 깨어나고 있어요. 이 나무만 살려주세요’ 집이 흔들리며 공포와 전율에 휩싸인다. 은행나무가 우지끈 단말마를 내지르며 바닥에 처박힌다. 우리 집도 내 알도 같이.
자른 나무를 이리저리 쌓아 두고 사람들이 아랑곳없이 철수했다. 나는 떠날 수가 없다. 부서진 집과 박살 난 알을 두고서... 꿈이라면 좋겠지만 숲은 황량해졌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 쓰러진 그늘막 옆으로 승용차가 멎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남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다. 망연자실하던 차에 복수는 나의 힘. 팽팽하게 날개를 펼치고 따라붙어 걷어찼다.
차로 다시 돌아올 그 남자를 기다린다. 어떻게 한 방 더 먹일까 궁리하지만, 비에 젖은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사람들은 새가 있어야 건강한 환경이라면서도 새가 깃든 나무를 무지막지 베어버린다. 새끼가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저네들 위주로 개발하는 인간들이다.
남자가 나를 보고는 재빠르게 차를 타고 사라진다. 까옥까옥!
3.자꾸 왜 그래?
나도 까마귀한테 차였다. 남편이 공격당한 지 나흘째에. 보충 글을 쓰려고 현장 확인차 일부러 찾아갔을 때다.
나무를 잘라낸 장소가 생각보다 넓다. 추측한 대로 까마귀 둥지가 있었다면 흩어진 나뭇가지 잔해를 찾기 위해서다. 굵은 줄기는 토막 내서 검은 천막으로 덮어 놓았고, 목재 가치가 없는 가지들은 마구 쌓여있어 참혹하다. 그늘막 주위에 다가가자 까옥...까옥... 쉰 소리로 힘없이 쉬엄쉬엄 운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감을 못 잡겠다. 도로 건너편 세 그루 소나무에서 까마귀가 날카롭게 짖는데 거기는 아닌 것 같다.
늦은 점심이라 배고파서 밥 먼저 먹고 찬찬히 살피리라. 일부러 가까운 식당을 찾아들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도로 확장 공사를 한단다. 나무를 언제 베었는지는 모르겠단다.
식당을 나와 다시 가보니 목이 쉰 까마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전봇대 끝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몇 번 높은 소리를 내고는 전깃줄로 날아와 가까워졌다. 마주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으니 휙 다른 전봇대로 날아간다. 멀리 가기에 안심하고 돌아섰는데 퍽! 뒤통수를 친다. 어맛!
충격에 놀랍고 무서워서 우산을 가져오라 남편에게 소리쳤다. 까마귀는 다시 처음 앉았던 곳에서 나를 향해 높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우산을 쓰고 살펴보려 했지만 정수리의 부딪침이 너무 생생하다. 어른 손바닥 넓이로 후려친 날개 감촉에서 느껴지던 적개심. 아프기보다 두려움에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왜 나를 걷어찼을까? 비극의 현장에 얼쩡거리니 한통속으로 보았을까?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었을까!
까마귀의 지능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깊은 물병에 고인 물을 먹기 위해 돌을 넣어서 수면을 높이고, 호두를 아스팔트 위에 놓고 자동차가 지나간 후 주워 먹고, 눈 내린 지붕에서 미끄럼을 타며 놀고, 반짝이는 물건을 모으고. 골프장에서는 카트 위의 비닐봉지에 먹을 것을 뒤지기도 하고 물어가기도 한다고.
이런 지능지수 수준으로 감성지수도 엇비슷하리라. 재난 현장에 나타난 인간에 원한이 발동했을까? 하지만 나는 까마귀의 고통을 알리며 사람이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고 공격하다니...
사흘 만에 또 그곳을 찾았다. 까마귀가 계속 있는지 궁금해서. 주차를 하며 보니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단념하고 다른 곳으로 갔나? 남편이 먼저 식당으로 들어가고 주변에 서성거리자 어디서 왔는지 가로등 위에 앉는다. 낮은 음으로 몇 번의 짧은 울음. 겁이 나서 얼른 식당으로 피해 유리창으로 바깥을 살핀다. 길 건너 강둑에 있는 세 그루 소나무에도 두 마리가 보인다. 숲이 사라진 지 열흘은 지났으리라.
우산을 쓰고 훑어보지만, 그루터기를 캐내고 쌓인 나뭇가지 무덤이 넓게 덮고 있다. 둥지 파편이 남아있기엔 심하게 변형되었다. 우산으로 머리를 방어하고 눈은 까마귀 위치를 살피자니 신경이 흐트러진다.
까마귀는 소나무 가지에서 내 쪽으로 건너오는 것을 포기했는지 가끔씩 여윈 울음만 토한다. 소리가 많이 잦아들었다. 우산 때문인지 공격할 힘이 더 이상 없는지...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까마귀 울음이 귀에 꽂힌다. 아파트 벽면에 부딪혀 소리가 우렁차다. 주차하는 남편을 현관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벚나무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내 쪽으로 날아와 눈앞으로 휙 가로지른다.
이 까마귀는 또 뭐지? 강을 건너 따라온 것일까? 까마귀 통신을 활용했을까? 요주의 인물이라고.
이젠 까마귀 소리에 내가 경계 태세에 들어가야 하나. 주제넘게 선을 넘어선 과도한 관심이었나...
2차선 도로 아래 쌈지공원이 있던 자리
옥상 난간에서 울부짖던 곳
내 뒤통수를 후려치기 전 까마귀
깃털이 부스스해 가슴 아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