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이야기의 주연 누에나방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하지."
집안일 미루고 책 읽는 제가 못마땅할 때 내뱉는 남편 말에
"그때 안 했으니 지금 하는 거야"
날름 되쏜 말이지만 진심입니다. 학창 시절 게을리한 공부를 어른이 되어서 벌충하고 삽니다. 숲해설가 일은 대부분이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공부라, 공부한다는 말을 즐겨합니다.
우리 집에서 삼대째 우화 한 누에나방. 분양받은 누에가 낳은 알에서 부화하고, 또 그 누에의 알이 부화했으니 손자 세대이지요. 올해 누에는 두 번째 월동한 누에씨입니다. 첫해보다 발육 상태가 늦나 싶더니 수컷만 일곱 마리 우화 했습니다. 종령일 때 다른 샘께 두 마리를 건네준 것도 수컷이랍니다. 대가 끊기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나방의 성비를 깨뜨렸을까요? 올해는 분양하고 아홉 마리만 길렀더니 이런 사달이 생겼습니다. 먹이 조달 시중 덜어보려다 누에나방에게 못할 짓을 한 셈입니다. 누에 기르기에 필요한 노력과 정성이 총량에 미치지 못했는지. 일곱 마리가 각개로 흩어져 날 수 없는 날개만 떨어댑니다. 생존은 했으나 번식을 완수할 수 없는 반쪽 생이 되었지요. 소수의 개체로 번식하면서 근친교배가 지속될 때 발육부전과 생식기관 이상은 있다지만 성비 균형이 망가진다는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모두 수컷으로 우화 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이별입니다.
누에를 받아 기른 첫해 냉장 보관하라던 누에알을 뒷베란다 구석에서 월동시켰습니다. 냉장했다 꺼내는 타이밍을 어째 맞추지? 의문에 자연 상태로 두었지요. 봄이 되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들고나며 지켜봅니다.
알에서 깨어난 까만색 누에는 3mm 크기만 해 개미누에, 털이 부숭부숭하다고 털누에라 부릅니다. 열흘쯤 지나 3령이 되면서 머리가슴 부분이 흰색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이때부터 뽕잎을 먹어대는 양이 많아집니다. 뽕잎을 이불처럼 덮어주면 먹은 잎 구멍으로 검은 머리가 숨바꼭질하듯 꼼지락거리다가, 이불을 깔개로 삼는데 설거지 끝낼 시간이면 족합니다. 굳이 먹이 위에 몸을 척 걸치고서 식사를 하는 이유는 뭔지? 야생에선 잎 뒤에 숨어 먹는데 사람이 관리하기 쉽게 적응한 것인지.
그러다 뚝 먹기를 중단하고 머리를 쳐듭니다. 배다리를 바닥에 붙이고 상반신을 비스듬히 세워서 잠을 잡니다. 투명 카우치에 기댄 듯한 특이한 수면 자세에서 ‘누워 있는 벌레’에서 누에 이름으로 변했나 봅니다. 이렇게 네 번 잠을 잔 누에는 번데기 직전까지 몸무게를 약 만 배가량 불립니다. 자라면서 벗은 허물은 뼈옷인 셈인데 정말 여기저기 던져놓은 옷 같답니다. 사람이 바지 벗어 놓은 모습이나 누에가 벗은 허물이나 도긴개긴이지요.
뽕잎을 냉장 보관하면서 수시로 먹이를 공급해야 합니다. 냉장고에서 나온 뽕잎은 쉽게 시들어, 싱싱한 뽕잎을 주자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네 언니는 내 밥은 안 챙겨줘도 누에 밥은 지극정성이다.”
남편이 여동생 부부한테 일러바칩니다. 집 근처 뽕나무 두 그루에서 꾸준히 잎을 따기 위해 가지 끝 순은 남겨둡니다. 손이 닿는 가지의 어린잎은 보호해야 하니까요. 잎을 한두 장씩 가위로 잘라낸 가지는 얼마나 빠르게 잎을 키우는지 눈에 보입니다. 그대로인 가지의 잎보다 더 커다란 잎을 며칠 만에 만드니까요. n분의 1 양분을 몰아주기 때문이겠지요.
누에를 기르다 보니 깊숙한 기억의 창고에서 무언가 꿈틀거립니다. 희끄무레한 벌레들이 소나기 오는 소리를 내며 뽕잎을 먹던 곳, ‘누에방’이 무서웠던 유년이 희미합니다. 책이나 영화를 본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데, 정말 누에를 쳤는지 물어볼 데가 없습니다. 어른들의 기억 도서관은 사라지고 집안에서 제가 가장 많은 자료를 저장한 도서관이 되었지만, 형편없는 기억력에 분류도 엉망입니다.
나비와 나방 애벌레는 모두 입에서 실을 토해냅니다. 번데기나 고치가 될 때 자신의 몸을 고정하거나, 나무에서 실을 타고 번지점프 하듯 땅으로 내려옵니다. 국내에 4100여 종이나 되는 거대한 나비목 집안에서 누에나방이 가장 긴 실을 냅니다. 한 개의 고치에서 풀어내는 명주실이 1500m나 된답니다. 누에를 기를 때 나오는 부산물까지 어느 하나도 버릴 것 없이 긴요하게 쓰여 하늘이 내린 벌레란 뜻으로 천충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고치를 푼 명주실로 비단을 짜고 고치 속에 든 번데기는 식용하고, 누에똥은 사료로 약재로도 쓰입니다. 오늘날은 건강식품 화장품 원료로 확장되니 상전벽해라 해도 되겠지요.
누에를 길러보면 나비와 나방의 한살이를 알 수 있습니다. 달포가량 기간에 환골탈태하는 변신을 목격합니다. 그 신비로움이 변신이야기 창작 동인이 되고 변신 주인공에 끌리는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먹이를 주며 기르는 정이 생겨나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벌레라면 관심조차 멀리했답니다. 그랬던 느낌이 생명 사랑으로 기우는 생각을 체험하게 되었지요. 자주 접하면 나와 다르게 생긴 생명체도 이해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징그러워하고 무서워하기보다 신기하고 경이롭게 바라보기가 삶에 기쁨을 더하는 것이 아닐까요? 공부가 주는 긍정 효과입니다.
뽕잎 눈에 모인 개미누에 털누에
뽕잎을 이불로 깔개로 삼는 이령 누에들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허물을 벗는 상태
입에서 실을 내어 고치 짓기
미인 눈썹의 대명사인 아미(娥眉)는 암수 공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