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좋아하세요?

-헤어졌지만 가까이하고픈-

by 허영회

아파트 쪽문을 나서면 산비탈 텃밭에 고수가 있습니다. 몇 년째 같은 자리인 손바닥 만 한 밭뙈기가 터전입니다. 원산지 지중해 지역에서 귀화한 한해살이풀을 어떤 방법으로 심는지 일 년 내내 보입니다. 바닥에 납작 붙은 잎이 붉게 변해 월동하는 모습도 보니까요. 4월 말부터 피는 꽃과 열매까지 사진이 꽤나 있는데 블로그 주인공으로 선택되지 못했네요. 바라만 보는 관계라 쓸 말이 없어서일까? 생각해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남편은 냄새에 호불호가 매우 분명합니다. 고수에서 발냄새난다고 아예 멀리합니다. 파 마늘 부추 같은 향신채와 들깻잎 방앗잎(배초향) 당귀 미나리 등 대체로 향이 짙은 채소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유독 고수에 극단적 반응을 보여 저마저 멀어지게 합니다. 베트남 여행지 식당에서 동생 부부가 고수를 추가 주문하니 선수를 치는 남편,

“나는 안 먹으니 너희들 앞에다 둬”

음식 앞에 두고 즐기는 사람과 못 먹는 사람으로 갈리는 분위기가 기분 좋을 리 없지요.


한때 이웃이던 지인의 고향 충남 금산에선 상추쌈에 고수를 곁들여 먹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상추와 고수 잎을 손으로 쭉쭉 찢어 넣고 고추장에 쓱쓱 비빈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그 집 남편은 고수 없는 상추쌈은 싱거워 안 먹는다면서 고수 예찬을 폅니다. 어찌나 달게 먹는지 저도 덩달아 맛나게 먹었습니다. 처음에 진한 향이 거슬리긴 했지만 못 먹을 맛이기보다 낯선? 맛이었습니다. 고수를 한 줌 얻어와 저녁 밥상에 올렸더니 냄새 싫으니 치우라고 합니다. 점심때 먹어봤더니 처음이 짙을뿐 괜찮아진다 해도 막무가내로 싫답니다.

그 길로 처음 만난 고수는 제게서 떠나갔습니다. 잊혔나 했는데 텃밭에서 알아보았으니 반갑기도 하고 무엇보다 꽃과 열매가 특이합니다. 산책길에 가끔 잎을 하나 따서 비벼 코에 대보며 그 이웃을 떠올려 봅니다. 향이라기엔 아무래도 강해 맛보기는 안 하지만요. 한번 떠나간 님처럼 입맛도 변절했는지. 그 옛날 비빔밥으로 즐기던 이웃과 마주한다면 다시 먹을 수 있을지...


중국과 동남아의 음식에 향채로 많이 쓰는 고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허브입니다. 학명 Coriandrun은 라틴어 노린재와 연관된 단어로 독특한 향을 말한 것이랍니다. 국내에서는 빈대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도시인이 빈대와 노린재를 알기나 할까요? 강한 향에 거부감을 가졌다가도 먹기 시작하면 마니아가 되는 묘한 채소입니다. 처음에 못 먹었다는 어떤 지인은 이젠 고수 때문에 베트남 국수를 즐겨 찾는다네요. 동남아 여행지에서 ‘고수 빼 주세요’ 글귀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고수 더 주세요’ 글귀로 갈아치우는 광고처럼.


우리 얼굴에 제일 앞쪽으로 튀어나온 코. 생각해 보면 원시시대 숲에서 생존하는데 후각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머리 앞쪽에 더듬이를 장착한 곤충과 비슷한 쓰임새지 않을까요? 시각은 나무에 가려지면 볼 수 없으나 냄새는 예민하게 캐치할 수 있습니다. 코는 섬세한 만큼 취약하기도 해서 화장실 구린내를 처음엔 역하게 느껴도 이내 적응돼서 무뎌집니다. 외국에서 한때 ‘페로몬 파티’가 이목을 끈 적이 있습니다. 이성 간에 끌림을 본능적인 땀 냄새로 선택한다지요.

맛과 냄새는 지극히 주관적인 데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범주도 다릅니다. 냄새 소재로 이야기하자면 천일야화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입맛이 너그러운 사람은 웬만하면 맛있게 느껴지니 식당에서 만족도가 높겠지요. 냄새에 대한 수용 폭이 넓다면 현지 요리나 토속 음식 문턱도 낮아질 테고요.

고수를 배척하기보다 먹을 수 있다면 소소한 즐거움 하나, 늘지 않을까요?

뒤로 말리는 꽃잎이 가장자리에서는 토끼 귀처럼 펼쳐지는 고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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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 모임을 가장자리 꽃잎이 펼쳐서 크게 보이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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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두른 꽃잎 닮은 꽃받침이 재미있는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