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은 순간이 있나요?
거리를 걸을 때마다 겪었던 인종차별, 홈리스, 마약중독자들을 보며 강국의 이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수많은 기회들이 분명히 보였다. 작게는 캠퍼스 안에서부터, 넓게는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속에서였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참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처럼 빠르게 재단하거나 바쁘게 판단하지 않고, 여유 있게 반응해 주는 그 태도들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사람들에게 바랐던 것도 이 여유였던 건 아닐까?’ 늘 바쁘고 긴장 속에서 살아오던 내게 부족했던 건 타인을 대할 때의 이 완충의 여백이었고, 시애틀은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자연과 도시가 가까이 있는 시애틀에서는 그런 태도가 더욱 자연스러웠다. 기숙사 앞 운동장에서는 새벽부터 조용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Denny Cafe는 아침 7시에 열어 오후 3시에 닫았다. 처음엔 ‘왜 이렇게 일찍 문을 닫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해가 밤 9시까지 지지 않는 시애틀의 일상은 우리의 시간 감각과는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는 커피가 내게 ‘잠을 이기기 위한 무기’였었다. 디자인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시험기간을 버티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루 3잔 이상은 기본이었고, 카페인을 끊으면 일상생활이 버거워질 만큼 습관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커피는 다르게 쓰이고 있었고, 단지 기호였으며, 여유를 즐기기 위한 도구로 보였다.
건강을 챙기는 방식도 달랐었다. 한국에서는 ‘해야만 하는 것’처럼 강박적으로 다가오는 운동이나 식단 관리가,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루틴으로 녹아 있었고, ‘건강은 삶의 일부이고, 운동은 정신 수양이다’라고 말하던 시민들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들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걸었고, 실제로 기숙사에서 수업이 있는 Condon Hall까지 매일 걸어 다녔다. 걸음이 느린 편인 나에겐 왕복 50분이 꽤 긴 거리였지만, 그런 이동이 반복되다 보니 하루에 2만 8천 보를 걷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평균 8천 보도 겨우 채우던 내 생활이, 시애틀에서는 하루 2만 보 걷는 루틴으로 바뀌었다. 돌아와서 휴대폰의 기록을 보며 깜짝 놀랐다.
환경이, 그리고 그 환경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시애틀은 ‘넓은 환경’만을 가진 도시가 아니라, ‘넓은 여유’를 배우게 해 준 공간이었다.
이 연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고, 그 안에서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목표였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고, 그 안에서 과탑을 유지하며 장학금을 받아 스스로 생활비를 벌고, 학교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등 나름의 성실함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연수는 나를 멈춰 세웠다.
터질 듯한 풍선에 바늘로 ‘잠깐! 너 좀 멈춰서 봐.’라고 말해주는 틈이 생긴 것 같았다.
사실 연수에 합격하고 나서도, 미국에서 정확히 내가 무엇을 얻어와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막연했다. 진로와 관련해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 사람들, 회사, 커뮤니티와 연결되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었다. 걱정이 앞섰다.
‘만일 내가 연락했는데 아무 답이 없으면 어쩌지?’, ‘찾아가서 대화를 시도했는데 거절당하거나 외면당하면 어쩌지?’
라는 불안이 컸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지금 돌아가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몰라. 만약 아무것도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온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도 교수님들에게 직접 메일을 돌리기 시작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제가 지금 시애틀에 와 있는데, 혹시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계신 분들과 연결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다소 대담한 내용이었다. 동시에 링크드인이나 레딧을 통해 시애틀 현지에 있는 IT 기업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연결될 만한 모든 가능성을 찾아봤다.
이렇게까지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집중한 이유는, 바로 ‘사람’이 내게 가장 어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었기에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고,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그 속에서 진심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늘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연수를 통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인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진정한 소통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간파하고, 보편적이지 않은 대답을 끌어내는 인터뷰 기술을 연습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나 스스로의 바닥부터 기반을 다져가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걸 해냈다. 참 소극적이고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던 내가, 한국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스스로 행동했고, 돌아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과정이 그저 꿈만 같았었다. 그중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과의 인터뷰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개발자분은 이렇게 말했었다.
“오직 나만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잠을 못 이룬 적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쓴 적도 있어요.”
이 말이 내 안에 울림처럼 오래 남았다. 나는 늘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주어진 역할 안에서 열심히 해내는 것에 익숙했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나만이 남길 수 있는 것이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림보다도 ‘글’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풀어내는 데 글이 더 편했고, 더 솔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입시와 전공이라는 틀 안에서 그림을 선택했었고,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끌고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맞는지도 헷갈리는 상태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인터뷰 이후, 한국에 돌아가면 직접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고민, 나의 경험, 나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말이다. 책이라는 형태가 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시도 하나는 마치 바늘처럼,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깨뜨려 지금의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게 한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이런 바늘 같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스쳐 지나갔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