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주일, 한 달을 지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다양한 성격의 사람을 겪게 된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화가 많았나? 이렇게 무례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얼마 전 좋은 강연이 있어 참석했다가 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강연 마지막 즈음, 질의응답이 끝나고,
뒷자리에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나에게 대뜸 "번아웃이 뭐예요?"라고 물어보셨다.
이어서 "증상이 어떤가요?"까지 질문을 던지셨다.
조금만 배려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법한 질문이었다. 예고 없이 다가온 질문에, 나는 당황해 어버버 거리다가 결국 모든 설명을 다 해버리고 말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저, 번아웃을 심하게 겪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셈이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자책했다. 나는 왜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은 다소 사적인 부분이라 삼가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거지? 라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다.
식당을 가도 무례함은 쉽게 볼 수 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직원이나 알바생에게 문의하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나이가 많든 적든, 식당에 고용된 사람으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쿠션어를 넣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모든 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본인들이 다루지 못하는 물건이 직원의 책임인 양 몰아붙이는 사람,
자신의 요구사항이 즉시 충족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 순서를 무시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
그들은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스스로가 무례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착하기 때문도, 필요할 때 할 말을 못해서도 아니다.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고, 모든 사람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동등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족, 자신의 자식은 귀하게 여기면서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스스로의 모순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반복된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다르다. 모르는 것은 물어볼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부분을 충족시키면 된다. 그러나, 모르는 것에 있어서 질문을 던질 때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가 나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며, 어떤 말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최소한의 분별력을 가지는 것.
그것이 존중이다.
언제부터인가 무례함이 솔직함인 양 포장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짐할 수 있다.
무례한 사람이 되지 말자. 멋있게 나이 들어가자!
작은 존중이,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