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시작 4>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by 딥페이지

소위 말하는 비빌 언덕의 부재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작가 본인이 특정될 수도 있지만, 이 일은 조금 밝히고 싶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이사를 해야 했고 집 보증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부모니까, 나보다 훨씬 어른이니까 보증금 정도는 도와주겠거니 생각했다.
그 생각이 화근이었다.


일주일 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전부터 보증금이 얼마 필요하다는 말을 여러 번 전했던 것 같다.

분명 “해주겠다”라고 했다. 못을 박듯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계약 당일, 연락이 두절됐다.


열 번을 걸고 스무 번을 걸어도 돌아오는 건 같은 음성이었다.

“삐 소리가 나면 음성사서함으로…”

그날의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허탈함은 지금 떠올려도 숨이 막힌다.
되도록이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을 고쳐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락이 잘 닿지 않았지만, 가끔 연락이 되는 날이면 시외버스를 타고 그가 있는 지역으로 찾아가곤 했다.

어른이니까.
부모니까.
그래도 믿어보고 싶은 존재였으니까.


몇 번은 괜찮은 듯 보였다. 하지만 또다시 일이 터졌다.
철이 없기로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시 연락두절. 이쯤 나는 거의 해탈의 지경에 이르렀다.


툭하면 연락이 끊기니 사람은 점점 미쳐갔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계속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그 무렵, 내 임계점도 거의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3월 어느 날,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그 동네를 떠났다.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찾으러 오면
“아, 이제 여기 살지 않는구나.”라는 후회라도 남기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장남도, 큰아들도, 큰 조카도 아닌
그저 ‘나’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망가졌을 것이다.
죽도 밥도 되지 못한 채, 결국 내가 나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은 최선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동네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나는 시달려야 했다.
듣지 않아도 될 소식들, 굳이 전해지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들어왔다.

애써 모른 척했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했지만
그 말들은 결국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렇게 내 병은 조금씩 더 깊어졌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참는 것이 미덕일 때도 있지만,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나는 참는 법만 배웠다.
그래서 화내는 법도, 화를 풀어내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참 미련한 방식이었다.


평화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또 다른 거대한 시련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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