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시작(5)

입대, 퇴소 그리고 군면제

by 딥페이지

나에게도 오지 않을 것 같던 군 입영통지서가 도착했다.
스물셋이 되던 해였던가. 한 차례 연기를 했고, 스물다섯이 되던 해 다시 영장이 나왔다.
더 이상 피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입대를 결정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공황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상에서는 큰 긴장 없이 조용히 지내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는 달랐다.

훈련소에서의 일주일은, 나에게 거의 생지옥에 가까웠다.
폐쇄된 공간, 제한된 움직임, 강한 통제, 그리고 끊임없이 조여오는 긴장감.
그 안에서 내 몸은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혈압은 요동쳤고, 이유 없이 숨이 막혔다.


2~3일 사이에 서류를 준비해 온 사람들은 하나둘 빠져나갔다.
나는 준비된 서류조차 없었기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편두통이 심해 불침번이나 아침 점호에서 제외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곳은 군대였다.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절차는 더 복잡해졌다.
병영지도관, 중대장, 소대장, 군의관까지.
이곳저곳으로 불려다니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며칠은 아찔하고 아득하다.

군의관은 “서류가 없으니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다시 맞이한 다음 주.

그제야 나는 견디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소견서를 받고 지구병원으로 이동하게 됐다.


두 시간 넘게 대기한 끝에 만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가면 어차피 다시 들어와야 할 텐데, 어떻게 할 건데요?”

타박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를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를 만큼의 공황,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압박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 그 상태가

얼마나 사람을 소모시키는지, 나는 그때 이미 한계에 가까워져 있었다.

결국 나는 6개월의 치료 기간을 받고 훈련소를 퇴소했다.


입대할 때와 퇴소할 때의 감정은 전혀 달랐다.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제는 병원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함께 밀려왔다.

이후 병원을 알아보고 치료를 이어갔다.

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병원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고,

병무용진단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병원들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찾아 진료를 시작했고
약 10개월의 진료 끝에 4급 판정을 받았다.


병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사람들,
그리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버텼어요?”

그러게. 나 어떻게 버틴걸까?


그 10개월은 단순한 치료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가족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동생과의 절연, 믿고 있던 친척들에게서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 무너진 것도, 관계가 끊어진 것도
전부 나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
우울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왜곡된 결론이었다는 것을.


이건 누구나 겪는 삶이 아니었다는 걸.

누구도 이렇게 살지 않는다.
훈련소에서 퇴소하고,
그 일로 가족과 단절되고,
질환을 인정받지 못한 채 버텨내는 삶을.

그제야 알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언제나 안전한 울타리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나서야
아주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회복이라는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회복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더 이상 완전히 무너져 있지는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 제가 군면제를 받은 것은 장기대기로 인한 면제입니다. 사회복무요원 신분도 아니었고, 민간인인 채로 3년을 소집되지 않고 보내면 상반기, 하반기에 따라 군면제가 되는 시스템입니다.

지금도 계속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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