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최고의 썅년이 되련다.

일단 나부터

by Donna

지금의 내 공간, 내가 음악을 듣는 것, 내가 어디를 가는 것, 내가 무엇을 먹는 것 등 여러 가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들은 싫지 않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오는 모든 것들은 후회도 없다. 내가 선택한 것에서 오는 만족, 나의 선택이 잘못되어도 상관없는 죄책감. 나는 그런 것들이 혼자 사는 삶의 특권이라면 그 반대로 사회성 결여에 대한 문제도 금방 흡수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 살게 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컸다. 동거인과 살든지, 가족과 살든지, 배우자와 살든지 집 안에 또 다른 인간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사실 아주 치밀한 사회성 훈련이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더 편해지고 싶고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고, 가뜩이나 바깥세상이 복잡해 죽겠는데 집에서 만큼은 편안하게 있고 싶다. 그런데 나와 또 다른 인격체가 함께 산다는 것은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잘한 갈등 속에서 둔해질 뻔한 사회성 훈련이 계속되었으면 했는데 어쨌거나 지금은 혼자가 돼버렸으니 묘하고 이상하고 괴상망측하게 안 늙었으면 참 좋겠다. 그냥 아주 후련하게 말해서 노처녀 히스테리는 나와 먼 거리의 이야기이길 바랄 뿐이었다.


최근 한 모임을 정리했다는 에피소드를 외국에 사는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그 친구와 난 어려서부터 가족 간의 불화나 부모님이 싸웠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할머니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과 아빠의 마음 더 나아가 내 형제까지 마음을 헤아린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짓일까 싶지만 우린 어려서 그런 역할을 해왔다.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이 누가 그렇게 시켰냐는 말인데 우린 절대 누가 시킨 게 아니다. 그냥 우리의 성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 신경 쓰고 있었구나, 참 고맙고 미안하네. "라는 말 한마디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우리를 당연하게 바라보는 게 참 화가 난다.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피곤하다. 그런데도 보이는 게 많아서 못 본 척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내가 중재자 역할이 연애까지 연결될 줄은 몰랐다. 내 감정은 뒤로 하고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려는 게 너무 짜증 나고 상대방의 상황에서 다각도로 이해하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최근 어떤 화실에서 3시간 수업을 진행하는데 정말 단 1분도 수다를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화실이었다. 나는 당연히 누드로 진행하고 있었고 표현에 도움이 될 만한 음악을 틀어 집중하고 있었는데 음악 볼륨을 최대한 키워도 내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점점 대화의 볼륨이 커져갔다. 모두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고 나는 극에 다 달았을 때 어떻게 말을 해야 이분들에게 최대한 예의 있고 정중하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선생님들, 제가 집중을 하기 위해 음악을 아무리 키워도 수다 소리가 끈이질 않는데 이어폰을 끼고 진행해도 될까요? 그럼 선생님들 그림에도 이어폰을 그리셔야 할 텐데, 어떻게 3시간 수업에 2시간 반 동안 수다가 멈추질 않죠? " 한 마디 했다. 선생님들은 이 수업이 대략 20년째 진행 중이고 우리는 이렇게 한 번 만나서 노는 날이니 이해해 달라고 하셨다. 분명 수업 중에 수다는 어디를 가도 어떤 과목에서든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수업이 오래되었고 그런 분위기라는 걸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

내가 아무리 화가 나고 빡이 쳐도 당연한 것을 잘못했는데도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내 감정은?

알겠어, 어떤 상황인지. 근데 나는?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근데 내 마음은?


상대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먼저이고 싶다. 나는 내가 따듯한 사람이고 싶지 않고,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친구는 나에게 그것도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게 능력일 수 있다. 아주 순간의 숨소리나 순간의 공기를 읽고 상대의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은 정말 능력이다. 누구는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다. 전 동거인만 하더라도 자기는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어이없음에 코웃음을 쳤고 나는 신도 아니고 네 엄마도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온전치 않다. 나는 이별했다. 겉으로 봤을 때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과 정신이 정상이 아니다.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것뿐이다. 나는 아주 예민하고 아주 미세한 말에도 화가 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온전하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날 이해시키려고 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왜 이해를 해야 해. 이미 끝난 일이라고. 그렇게 이해를 시키려고 하면 내가 헤어진 게 다시 이어져? 다시 이어질 필요도 없잖아. 근데 왜 끝난 상대를 불러다가 날 이해시키려고 해? 그냥 들어줄 수는 없는 거야? 아니 상대가 어떻든 간에 일단 나부터 좀 살자고. 일단 나부터 좀 살고 나서 아는 척을 하든 상대를 이해하는 척 하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엊그제는 꿈에 전 집에서 동거인과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다 웃고 입맞춤을 하길래 놀라서 깼고, 어제는 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욕을 하면서 깼다. 이별의 여파가 이삿짐을 모두 정리하고 할 일이 없으니 이제야 도드라지는 거 같다.


나는 아무리 불혹이라도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은 잊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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