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괜한 자극

마지막 주말과 마지막 일요일.

by Donna

오늘은 단편영화 미팅을 하러 성수에 들렸다. 먼저 보내 준 시놉시스를 읽고 대화를 나누며 촬영 일정 스케줄을 정했다. 단편영화는 오래 알고 지낸 아주 똑 부러지고 아주 나이스 하며 아주 건강하게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는 부부가 만드는 작품이다. 나는 그 부부 중 아내와 친구라면 친구고,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료라면 동료이고 서로 응원과 힘을 북돋아 주는 언니 동생 사이이기도 하다. 우린 내가 처음 동거하던 전 남자친구 영화 시사회 자리에서 만났다. 한 테이블에 합석한 우린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다. 전 남자친구도 합석한 그들을 몰랐다. 전 남자친구는 그 작품에서 중요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시사회에서 본 그는 참 작아 보였고 좁아 보였다. 어딘가 거들먹거리며 껴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 촬영 상황을 복귀해 보면 그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현장에서 퇴출되었다가 다시 합류했다가를 반복한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는 나와 헤어진 1년 반 뒤에 연락이 다시 와 그 영화를 끝으로 영화작업은 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떠났고 나는 하나도 연결고리가 없다고 믿었던 부부 중 아내(이하 예술가 A)와 대략 10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 스토리는 대략 이랬다. 직업이 배우인 유부녀가 결혼 후 일이 뚝 끊기자 배우를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흔들림에 갈팡질팡 하는 스토리다. 그 사이 춤을 업으로 하는 나를 잠깐 만나는 에피소드가 있는 거다. 영화인 부부는 몇 년 전 내 공연을 보러 왔었다. 배경음악도 없이 오로지 내 몸에서 나는 소리로 50분을 채운 공연이었다. 구음과 몸을 두드리는 소리, 캐스터네츠, 발을 구르는 소리로 50분을 채웠다.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살려 내가 편하게 대사칠 수 있게 대사를 써줬다. 시나리오는 참 재밌었다.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암흑 같은 길을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스토리였다. 우리는 회의인지 대화인지 모르게 몇 시간을 말하는 것에 쏟았다. 그리고 이게 우리의 새해 첫 작업이다. 우리 같은 프리랜서들에게는 새해에 단 하나라도 확정된 일정이 있으면 좀 마음이 편하다. 뭐랄까, 빨간불에서 노란불이 켜져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업을 실행하면 초록불로 변하는데 적어도 모든 날은 아니어도 단 며칠이라도 초록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뭐라도 쓰임 받을 준비를 한다는 거고 그게 우리의 에너지 원동력이 된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며칠의 초록불을 위해 장전하는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오늘도 헤어짐이라는 것을 살던 집에서 추방당했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또 얘길 했다. 상대방은 궁금하지 않았을 거다. 전혀. 그런데도 요즘의 나는 가장 최근에 경험한 슬픈 일이자, 억울한 일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관계를 맺어 온 지인들 한정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나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며 지금의 나를 누가 위로해 줘도 모자랄 판에 내가 누구를 배려할 처지가 아니란 말이다. 평정심. 무난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눈을 뜨면 너무 평화로웠다가 밤이 되면 찾아오는 허전함 그리고 그 속에서 잠을 청하는 것.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 하루하루 잘 버티며 살고 있다. 며칠 전 '전화 총량의 법칙'을 올린 후 나는 당일치기로 출장을 다녀온 날, 10시간 동안 운전을 했음에도 그 누구와 통화하지 않았다. 하루 그렇게 글을 남겼다고 해서 마음이 정리가 되고 행동이 정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미팅이 끝나고 영화인 부부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바로 귀가하려던 참에 성수동에서 팝업을 한다던 지인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친구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린 반갑게 인사를 한 뒤 한 테이블에 앉아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 갑자기 어쩌다 언제 헤어진 거야? "

" 이번에 귀국하고 나서 그렇게 됐어요. "

" 아니 뭐 때문에? "

" 혼자 있고 싶데요. “

" 근데 그때 잠깐 보니까 그 친구는 blablablblabla"

"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저도 많이 참았던 거 같아요. 그냥 이렇게 계속 사는 거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네요. "

" 뭐 다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하지... "


하루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한 거다. 하루에 한 번도 부족해서 하루에 두 번. 나는 괜찮게 마음을 움켜잡고 있었는데 하루에 두 번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 숨을 연거푸 쉬어도 답답했고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때마침 팝업 행사가 끝나가는 시점이었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흐르는 라디오에서는 오늘이 마지막 주말이라고 말했다. 12월 인 것은 알았지만 이제 마지막 일요일이라니. 오늘이 지나면 29, 30, 31이 남는다. 그리고 1이라는 숫자가 다가오는데 왜 12라는 숫자가 월의 마지막일까. 답답함과 두통이 점점 심해질 때쯤 나는 울고 싶었다. 오늘이 그날인가 싶었다. 지금 말하는 그날은 이별 후에 오는 현타라고나 할까. 이사하고서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이제는 이별에 익숙해져서 눈물 따위 안나는 건가 싶지만 내 감정은 울고 싶었다. 그래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내 감정과 신체적 반응의 연결이 끊긴 것처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외투도 벗지 않고 3-4시간을 핸드폰만 하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라디오를 틀었다. 시간대는 달라졌고 음악은 클래식에서 재즈로 바뀌었다. DJ는 오늘이 마지막 일요일이라 말한다. 슬라임처럼 바닥에 녹아져 있던 나는 꾸역꾸역 외투를 벗고 부엌으로 간다. 식은 군고구마를 입에 넣는다.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외투 위로 눕는다. 또 핸드폰을 한다. 나는 계속 내 감정을 확인하고 있다. 내 목에 감겨있는 단단하게 굳혀진 나무막대기 같은 건 뭘까. 또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다시 부엌으로 가 고무장갑을 낀다. 밀린 설거지를 하며 라디오를 듣는다. 아니, 왜 마지막인거지?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너와의 마지막에는 아니 우리의 마지막은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너는 마지막이 이런 거야? 내 마지막도 이런 거라고? 얼추 설거지가 끝날 즈음 내 목에 엉켜있는 감정과 점점 더 화로 변한 답답함에 고무장갑을 집어던지고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서 글을 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괜히 예의를 차리게 하며, 괜히 이유를 만들어 괜히 아쉬워하고 괜한 후회와 괜한 마음으로 괜한 감정까지 들게 한다. 내가 지금 너무 빡이 치는게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뭘 안 한 거 같다. 하아, 마지막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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