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서 있기 위한 씨발비용

씨발비용에 소제목이 무슨 소용이랴

by Donna

시간이 미친 듯이 흐른다. 요즘 시간이 흐르는 것에 예민한 건지 둔한 건지 달력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새해가 시작된 건 양력이지 음력은 아직 2025이라 만으로 치면 아직도 아홉수인데 20대도 그랬고, 30대도 그랬다. 나에게 아홉수는 늘 숨 막혔다. 분명 못 살았던 것은 아닌데 마치 10년을 돌이켜보면 못 살았다기보다 무언가 더 했었어야 하지 않았나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그럼 10년씩 이런 순간이 다가온다는 건데 그 시기마다 나는 항상 후회하고 항상 아쉬워해야 하는가.


분명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진정 본능에 충실했음에도 아쉬움이란 감정은 왜 드는 걸까. 내가 이다음에 곧 하늘나라에 갈 그 근방 어느 날에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제일 먼저 앞세우는 감정은 무엇일까.


아직 내가 부양할 가족이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걸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분이 안 좋게 흘러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안 좋은 상태를 계속 드러내기보다 안 좋은 상태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출을 더 받았다. 이제 더 이상의 대출은 없다. 이 돈은 내가 혼자 살기 위한 비상금이고, 그 비상금에 내 기분을 원점으로 돌려놓기 위한 씨발비용이라고 정의를 내리자. 그리고 그 씨발비용으로 집에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비행기 티켓을 샀다. 이게 뭐 대단한 건 아니다. 사실 비슷한 또래라면 별로 큰 타격감이 없는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도전이다. 필라테스가 비싸다고 징징대며 등록하지 못했던 나 자신, 외국은 플라멩코 공부를 겸비한 스페인을 중심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잠시 갔던 나라 말고는 이번 계기처럼 오로지 여행만 하는 건 거의 없다. 지인도 없는 게다가 한국인도 거의 없는 여행지로. 언제나 나는 어떻게든 내가 잘 서있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잘 서 있을 수 있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겁 없이 대범하고 당차게 선택해서 온몸으로 불과 바람과 물을 헤쳐 달려야 한다.


내 인생의 속도는 시속 몇 킬로가 적당한 걸까. 내 마음은 어린이 보호 구역과 고속도로를, 목욕탕이라 친다면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신이 바라는 속도는 과연 몇 킬로를 원하는 걸까. 아니 내 마음은 수시로 바뀌는데 나의 뇌는 어린이 보호구역만 아니면 고속도로만 있는 걸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수도 없이 이성과 감성이 싸우고 있다. 묵묵히 하던 일을 해도 언제나 내 자아는 싸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더 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아예 때려치워야 하는지.


오늘도 해가 졌다. 하루가 끝났다. 나는 또 어둠의 시간을 보낸다.

우울한 건지 외로운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요즘 혼자의 시간은 깊은 해안의 늪에 빠져있는 거 같다.

재충전, 환기, 텐션, 흐름.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뭘까.


2026년 2월 1일

저녁 6시 (하필)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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