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개의 원.

벌써 1월 하고도.

by Donna

이별에 대한 후폭풍이 묵지근하고 지긋이 내 가슴을 누른다. 요즘의 나는 잠을 자면 항상 꿈을 꾸는데 억울해서 깬다. 꿈의 내용은 난 뭘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날 의심하고, 나는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데 사람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나는 그 언성이 육성으로 터져 나와 깬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날은 무시를 당하는 꿈을 꾼다. 어쩌면 억울함과 무시당하는 게 같은 감정일 수도 있다. 단어는 어떨 때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거니까.


몇 주간 주말마다 지방 출장이 있었다. 한 주 갔을 때는 다녀올만했는데 이게 몇 주 반복이 되니 다녀오면 며칠은 기운이 생기지 않았다. 당일치기로 왕복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운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출장 외에는 바쁜 일이 없으니 다행이었지만 몸의 피로는 꽤 오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정신 차려 보니 벌써 다음 주가 1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2026년의 시작이 참 싫어서 2025년 마지막 날을 술만 마시다 자다 일어났는데 그 기분 더러운 날이 20일이 지나있다. 나의 하루하루가 가로로는 총알 같이 지나가고 세로로는 위아래를 널뛰는데 그 선들을 쭈욱 따라가 보면 곡선이 되고 그 곡선이 서로 만나면 하루가 끝나있다. 나는 그 곡선의 흐름과 더불어 맞닿는 지점이 원의 모형이라 말한다. 내가 방금 만들어 낸 개똥수학의 계산법에서는 하나의 원을 하루라 칭한다. 그리고 그 원이 벌써 20개째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이다. 점. 점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진짜 작을 수도 있고 엄청 클 수도 있다. 정말 얕을 수도 있고 너무 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점들의 시간이 요즘은 참 얕아서 계속 튕겨져 오른다. 마치 탱탱볼 같은데 중력과 무중력을 오가는 기분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생각나고, 집중하지 않으면 생각난다. 더 괴로운 것은 움직이는 시간이 길지 않고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을 자는 동안 누가 나를 괴롭히라고 시키는 것 마냥 악몽을 꾸는 거다. 하도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꿈 안에서도 나를 안정시키고자 또 다른 이성이 이런 말을 건넨다.


괜찮아, 꿈이야. 반응하지 않아도 돼.


지난 주말에는 무려 7시간을 클럽에서 보냈다. 술을 미친 듯이 마셨어도 취하지 않았고, 춤을 미친 듯이 췄는데도 순간의 멍 때림은 여전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맨바닥에서 외투를 덮은 채 잠이 들었다. 꿈은 여전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아니면 내가 잘못했다고 느끼게 하는 요인은 뭘까. 아니지, 난 너무 억울한데 그 억울함을 어디에 표출해야 하는지 목적지를 잃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마치 가위눌리는 것도 반복되면 익숙해지듯이 꿈에도 익숙해져 살짝 덜 깬 상태로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또 꿈을 꿨다. 전 애인과 거실에서 한 마지막 대화의 상황이었다.


" 오늘이 우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야. 더 이상 할 말 없어? "

"... "

" 너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니? "

"... "

" 왜 말을 하지 않아? 그게 우리가 보낸 시간의 결과야? 고작 이거라고? "


꿈속의 그녀는 처음엔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내가 되물으면 되물을수록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마지막에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사실 내가 억울함을 표출해야 하는 목적지는 그녀다. 그런데 그녀는 마지막에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헤어짐과 동시에 그녀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차단했다. 그리움에 내가 그 집에 다시 방문한다고 해도 이미 내가 살았을 때의 느낌은 증발해 버렸을 것이다. 고양이들도 이제 나를 잊었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아늑함은 없고 내가 누렸던 따듯함은 재활용도 아닌 일반쓰레기로 버려졌을 거다. 매립도 아니라 소각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면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치밀어 오르는 화가 곧 꿈으로 연결되고 꿈속에 등장인물들은 나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나는 억울함으로 비치겠지.


꿈꾼 뒤 며칠이 지났다.

하루가 몇 개가 흘렀나 원을 그려보다 알았다.

꿈을 꾼 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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