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도움도 안 되는 결과론적 판단
뮤지컬 배우를 시작한 이후 여러 문제들이 나를 휩쓸어 아무것도 못했을 때 나는 미래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뭘 준비해야 앞으로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 카르멘이 되어야지. '
카르멘이 이미지에도 잘 맞기도 하거니와 해석 불가능한 언어들과 열정보다 더 뜨거운 화가 맞물리는 순간이 나와 플라멩코가 잘 맞아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사실 이건 지금에 와서 연결 지은 이유지만 그때 당시엔 가장 단순히 카르멘이 되고 싶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맞서 싸우려면 나는 강인해야 했고, 사빠떼아도(Zapateado : 플라멩코 춤에서 발을 구르는 단어)를 잔다르크의 검과 창 같이 몸에 지녀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난 나무 바닥에 발을 처음 굴렀을 때를 잊지 못한다. 그 울림은 심장까지 와닿았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며 수업 듣다가 그것도 안될 때면 몇 년 또 쉬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 사이 플라멩코만 한 것은 아니다. 프로필 사진이 필요해서 방 안을 스튜디오처럼 꾸며 셀프 포트레이트 기법으로 메이크업과 촬영, 편집까지 혼자 해결해 남겼다. 나는 분명 프로필을 찍고자 한 것이었지만 무의식이 불러온 결과물은 남달랐다. 실제로 한국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여성의 이미지와 밤의 세계에서 만나 볼 법한 여성, 경험해보지도 못한 약쟁이의 얼굴을 한 여성, 그 누군들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과 남성을 넘나드는 한 인간의 모습 등등 이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 재미가 들어 한 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00~300컷 정도 Canon 400D 카메라를 리모컨 없이 밤을 새워 촬영했다. 그리고 새벽에 SNS에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늦은 오후 일어나 반응을 살폈다. 난 그때가 힘들었지만 가장 재밌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표현의 욕구가 용암처럼 솟구쳤고 욕구를 내 몸이 감당할 수 없어 21시간을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기절한 적도, 어떤 스님은 귀신이 나도는 시간에 저렇게 얼굴에 장난질을 하니 심신의 정화를 위해 법당에 가서 108배를 하고 오라는 말씀도 하고 가셨었다. 실제로 촬영하다 너무 지쳐 화장도 못 지우고 잔 날에는 유체이탈의 경험도 했다. 왜 그렇게 그런 작업에 홀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게 공연을 하지 않는 내 존재를 알리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우린 우리의 삶을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나. 지나고 보면 그런 의미가 있었나 싶고)
유독 나의 모든 것이 뿌리내린 이 나라에서는 표현에 있어서 결과에 대해 집착이 심하다 못해 어마무시하다. 그저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왜?"라는 질문이 따라오고 "그걸 해서 뭐 해?"라고 물어보며 "돈은 벌 수 있어? "라고 대화를 단절시킨다.
그 시기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 질문들은 표현의 욕구를 짓누르고 하찮은 것으로 변질된다. 돈이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증명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 적도 없거니와 전공자도 아니고 이력도 없으니 작가로서도 인정받지 못하지 않냐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지인들의 암묵의 결과론적 판단에 그저 나는 밤에 잠 안 자고 귀신에 씐 것 마냥 미친년 널 뛰는 행위가 돼버린 것이다.
결국, 표현이라는 것은 증명된 곳에서
받는 인정을 요한 것이었나.
증명된 예술가의 길을 가려면 증명된 곳에서 증명을 받기 위한 표현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이 활자를 문제없이 읽을 줄 아는 민족이라면 더더욱이 본능적으로 과정이나 작품을 즐기는 것이 아닌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어 이력을 보고 이성주의적 판단에 반응한다.
나는 플라멩코로 증명된 예술가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한 지 4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이전에 지난 시간들 속에 증명되지 않은 작업들을 녹여 공력으로 쌓는 중이다. 매 해 기획자와 함께 지원서 작업을 하고 지원서 선정을 기도하면서 이다음에 어떤 것을 더 준비하면 좋을지 증명의 자료와 증명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표현의 욕구가 증명의 길로 가는 순간 욕구의 본질은 이성의 길로 접어든다. 그게 어떻게 보면 명확해지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무의식보다 의식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본능적이고 무의식으로 만들어진 작업물은 예술이 아닌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