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렇게 대단한가.
내가 유럽 기반의 무용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꿋꿋이 플라멩코를 하는 것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참 다른 문화와 다른 감성 그리고 그 어떤 춤보다 다른 움직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기특하고 용감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도 인지하지 못한 것이 있다. 처음 한국에서 플라멩코를 배운 것이 내가 24살 때니까 나도 모르게 16년을 끈을 놓치 않고 계속 하고 있었던 거다. 무척이나 강렬하게 끌려 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전에 박수무당에게 오방기를 뽑을 때 나는 한국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좋아진다고 했었다. 좋아진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린 나이에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사주에는 뜨거운 태양에 소나기가 내린다고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죽을만 하면 소나기가 내린다는 것일까. 또 나는 계속 외국을 다닐 팔자라고 했다, 그게 타의든 자의든. 어쩌면 나는 비행기 안이 더 아늑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늘에 떠오르면 보이는 길 그리고 명쾌하게 떨어지는 답, 저기로 가면 큰 나무가 보이고 저기로 가면 길이 없을 거고 다른 길로 가면 좀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설명서를 비행기 안에서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닉네임에 솔은 스페인어로 태양을 뜻하며 돈나는 이탈리아어로 결혼한 여성을 뜻한다. 사주에도 이름에도 태양은 나와는 멀리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무수한 장르 중에서 한국에서 시작된 예술보다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외국에서 들여온 장르를 하는 그들은 타국의 것이라는 이유를 앞세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멩코 하는 사람들은 왜 스페인 예술을 배워왔다는 것을 앞세울까? 그리고 그 이유를 앞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특별함을 앞세우는 것일까.
나는 모든 것이 예전에도 그랬듯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항상 힘든 시기가 있고 힘든 일이 있지만 그냥 무던하게 흘려보내고 싶다. 감정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정을 어떻게든 표출해야 한다고 믿었던 나에게서는 새로운 변화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점점 나는 무서운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다. 아니면 점점 무르는 사람이 되는 거일 수도 있겠다.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무던하게 플라멩코를 하고 싶다. 특별함을 내려놓고 대단함을 내려놓고 꾸준하게 플라멩코 춤을 추고 싶다. 대상을 앞세운 욕심이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욕심과, 내 자신에 대한 만족과, 내 자신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이 먹을 때까지 춤추고 싶다.
세비야에서 3주의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2달의 수업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에 5-6 시간을 춤을 췄고 그 결과는 매일 밤 퉁퉁 부어오르는 발과 조금씩 아파져 오는 엄지발가락이었다. 언제 또 이렇게 춤을 춰볼까 싶었다. 발이 붓는 것은 참 아팠으나 조금씩 적응되리라 기도했다. 그러다 3주가 끝났다. 조금 익숙해질만한 할 때 끝난 격이다.
신은 절대 후회할만 일을 주지 않는다. 언제나 적절한 시기를 주며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타국에 오면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화는 없다. 그저 흘러가는 물 속에 내 인생을 던져놓고 점점 지켜보게 된다. 한 달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급히 잡은 세비야 일정에 3주 수업 밖에 못한 것도 다 이유가 있을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가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춤춘 나 이제 휴가를 즐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