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이사.

그리고 이별.

by Donna

" 이 집을 팔아야 할 거 같아. 그리고 우린 앞으로 따로 살았으면 좋겠어. "


8월 중순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갑작스럽게 동거인이 이사 얘기를 했다. 이 전에도, 그전에도, 재개약을 하기 전에도 이사를 생각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몇 번 얘기를 흘려놓고 흐지부지하게 흘러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 반복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그녀가 진지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기분이 엄청 좋아져 있거나, 너무 취해서 비틀거리다 침대에 눕기 바쁜데 이번만은 뭔가 무거운 느낌으로 돌아왔길래 물어보니 저런 말을 하더라.


함께 한 시간이 5년이다. 5년의 시간 중에 따로 살았던 6개월을 빼면 함께 한 시간은 4년 6개월이고, 거기에 내가 외국에 다녔던 시간 6개월을 빼면 꽉 채운 4년의 시간이다.


그녀의 출근을 보고, 고양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조금 시간이 난다 싶으면 저녁을 해야 하는 시간이고, 그리고 퇴근을 맞이하고. 내가 바쁠 때를 제외하고 이런 삶의 패턴으로 살다가 갑자기 모든 게 정리가 되었다.


귀국한 후 한 달은 그녀를 유심히 지켜봤다. 정말 집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애정의 문제인지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처음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흔쾌히 이해했다. 때마침 나도 분리가 필요했던 시점이었고 나도 나만의 공간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누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라고 부축인 건 아니다. 그런데 직업 특성상 나는 프리랜서이고, 그녀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내가 더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재정적인 것도 나보다 그녀가 더 많은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녀도 나에게 할 만큼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해했고, 깨끗한 집을 보고 기뻐했으며, 고양이 얘기에 서로 웃을 수 있었다.


당장에 집을 구할 수 있는 큰돈은 없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청년주택, 예술인주택 등을 알아보고 내가 신청할 수 있는 것을 신청해 보았다. 그녀가 나에게 집은 좀 알아보고 있냐고 물었을 때 이런 내용을 전달하니 그건 당장 나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 되받아쳤다. 그때부터 아마 나는 정나미가 떨어진 거 같다. 무엇보다 내 곁에서 5년이란 시간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이 길을 가고 있고 어떻게든 질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애써서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 되받아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가장 잘 이해할 거라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배신감과 괘씸함에 더 빨리 이 집을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버렸다. 천둥번개가 치고, 구름이 미친 듯이 휘몰아친다. 내 벽은 무너졌고 나는 갑자기 땅 속으로 꺼질 것만 같다. 천정도 없고 창도 없이 태풍이 세차게 내 몸을 후려친다. 어떻게든 잘 서 있어야 한다.
한쪽 발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쓰러지면 안 된다.

처음 알아보는 집 그리고 두 번째 알아보는 대출, 또다시 없을 거라 믿었던 이별까지. 이 모든 게 3단 콤보로 터져버려 지난 3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공황장애가 시작된 듯한 느낌이었고 이제는 나이까지 먹어버려 어딘가 토해 낼 곳도 없었다. 나이 듦의 설움이라면 각자 모든 삶이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을 유지하고 버티느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없고 여력도 없다. 누구에게 기대어보고, 위로받아보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청춘이라는 시기에 가장 많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이 듦은 여러 감정이 두루두루 마음에 저장되어 이제는 놀랍지도, 아프지도 않은 것 같다. 왜냐면 이번 이별은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게 눈물이 나지도, 삶이 무너질 거 같지도, 미래가 없을 거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방금 길이 사라진 거 같아도 금방 길을 만들어가는 게 청춘을 제외한 삶의 방식이니까.


아무튼 나는 불혹의 나이에 완벽하게 독립이 시작되었다. 이 공간에는 고양이들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만의 숨소리만 존재한다. 누가 날 깨우지도 않고, 누구를 위한 식사도 그리고 누구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올해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정말 빠른 결정과 빠른 실행력을 보인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나는 보이지 않게 무너졌으니 이제 날 세워줄 수 있는 즐거운 사람들과 집들이를 하며 공허하게 비워진 따듯함을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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