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야만 명상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명상이라 불리는 행위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요즘 서구권에서 meditation이라 불리는 것이 꽤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는 것도요.
타커뮤니티에서 작성한 글의 댓글에 "나보다는 타인에게 집중을 요구하는 사회 기준에 맞추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라는 문장을 보았습니다
물론 현상에 의한 개인의 반응은 상대적인 것이나
간디나 부처가 스마트폰을 들게 되어도 저 말에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토록 현대에서 '나에게 집중한다'라는 행동과 의미는
대비적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冥想/瞑想
어두울 명,생각 상 / 감을 명, 생각 상
(이른바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단어의 의미와 같이 명상이라 하면
대개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항상 눈을 감아야만 명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초등학생 시절 항상 청소당번을 맡곤 하였습니다
보통 학급에서 맡은 순번에 따라 돌아가며 (청소당번을)하지만
당시 학폭을 당하였던 저로써는 일진이라 불리는 무리들과 같이 하교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기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늘 청소당번을 자처 했습니다.
물론 그들을 피해 다행인 것도 있었지만
그런 것을 차치해두고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구나.' 를 알게해준 행동 중 하나 였습니다.
책상을 천천히 구석으로 밀어넣고 지우개 똥과 친구들이 잃어버린 필기구 같은 것들을 쓸거나 주워
분리수거장에 작은 박스를 가져와 분실물 통을 만들어 교탁에 얹어두고 나오면
다음날 친구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었었는데
그 작은 인사들이 제 마음속엔 꽤 크게 다가왔습니다
아마 저라는 사람이 일진 무리들을 피하고
마냥 청소 시간을 회피용으로만 사용했다면
저는 앞선 얘기와 같은 사람이 절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듯
'방과후에 해야하는 청소라는 행위'는
이겨낼 수 없었던 학폭의 트라우마도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없었을지 모를 교내 생활에서도
명상으로써 저에게' 담담히 주어진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아닌가
당시 어린 저의 기억은
저에게 '오롯이 혼자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위와 같이 타인들이 기피하는 방과후의 청소시간이 될 수도 있고
요즘의 저가 한강변을 달리며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할까?'
궁시렁 거린 달리기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