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백두산 패키지에 속지 마세요

백두산 페키지 여행에서 분통을 터뜨린 이유

by 이앙꼬

별생각 없이 TV를 켭니다. 홈쇼핑 채널인가 봅니다. 남녀 진행자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여행상품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며 채널을 돌리려는데, 아이쿠, 목적지가 백두산입니다. 채널 고정, 시선 고정, 화면을 가득 메운 눈 덮인 천지의 풍경에 빠져듭니다. ‘어머 저건 사야 해’, 더 볼 것도 없었습니다. 홀린 듯 전화기를 집어 듭니다. 가격도 참 착했습니다.


드디어 백두산에 가게 됐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마음은 이미 백두산에 가 있었습니다. 서둘러 여행 준비를 히야 합니다. 저는 그 흔한 패딩 한벌 없습니다. 아, 그런데 희한한 노릇입니다. 다른 채널에서는 바로 그걸 팔고 있습니다. 그 옆 홈쇼핑에선 방한화도 팝니다. 저는 연신 다이얼을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요술램프 지니가 따로 없었습니다.


다른 거 사러 없는 거 없이 다 있다는 매장엘 갔는데 내복이 눈에 띕니다. 스스로 열까지 낸다는데 가격은 겨우 한 벌에 8천 원입니다. 딱 하나만 남아 있었습니다. 청하면 주시고 찾으면 얻을 것이라 하신 말씀(마태 7.8 참조)이 실감났습니다. 그 모든 게 저를 위한 주님의 완벽한 계획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했으니 원 없이 다녀 오라는.


마침내 한겨울의 백두산으로 향한 장도에 올랐습니다. 중국 장춘 공항에 내려 다른 일행과 만났습니다. 모두 열세 명, 그중 열둘은 부부 같습니다. 저만 덜렁 혼자입니다. 모두가 저를 힐끗힐끗 째려봅니다. 의아하거나 신기하거나, 뭐 그런 눈치입니다. 그야 진작부터 각오하던 바, 그냥 초연했습니다. 가이드는 영화에서 보던 사투리를 구사하는 조선족 청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여행은 제대로 폭망이었습니다. 광고와는 모든 게, 완전히 달랐습니다. 수더분한 인상의 가이드는 만나자마자 옵션목록부터 들이밀었습니다. 돼지고기를 소고기로, 발 마사지를 전신으로 상향하는 식입니다. 말이 그렇지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가격도 200달러나 됩니다. 원화로 줄 때도 굳이 달러 환율을 요구했습니다.


장장 5시간을 쇼핑에 끌려 다녔습니다. 품목은 라텍스와 침향. 둘 다 아열대 지방의 특산품인데 그 추운 도시에서 굳이 그걸 사야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어설픈 한식 일색입니다. 삼게탕이라 해놓고 장뇌삼 대신 정체불명의 버섯만 넣었습니다. 정확히 1인 반닭입니다. 양고기 꼬치는 고무처럼 질겼고, 옥수수 국수 육수에선 쇠 맛이 났습니다.


가장 화나는 건 천지는 근처에도 못갔다는 사실입니다. 가이드는 눈이 많이 쌓여서라고 변명했습니다. 겨울에 눈 쌓이는 거야 당연한 노릇인데 그 때문에 입산금지라는 게 도무지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눈은 겨울내내 쌓여 있을 터, 결국 이 계절엔 천지까지 오를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다 알면서 백두산 상품을 판 건, 일종의 사기 아닌가요.


그때 저는 TV를 왜 킨 걸까요. TV는 또 왜 홈쇼핑에 맞춰져 있었고, 거기서 마침 제 오랜 로망인 백두산 패키지를 판 건 그냥 우연이었을까요. 더욱이 제 연차가 3일이나 남은 걸 그네들이 또 어찌 알았을까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줄지어 등장한 가성비 갑의 신발과 옷가지는 또 무슨 조화였던 가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허무하고 또 허무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핍을 교묘히 이용해 돈을 법니다. 몸 아픈 이에게 밀가루 만병통치약을, 외로운 사람에게 로맨스 캠을 들이미는 식입니다. 주님께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왜곡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신명 27.18-19 참조)이라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음 나쁜 이들의 귀엔 전혀 들리지 않나 봅니다. 그들은 정녕 하늘이 무섭지 않나 봅니다.


모든 건 제 탓입니다. 저는 다른 게 아니라 백두산이라는 핑계로 성탄축일을 빼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그 거룩하고 기쁜 날에 저는 성전을 떠나 라텍스매장이나 떠돌고 있었습니다. 꿈의 백두산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한 것은 그에 대한 가장 가혹한 징벌이었습니다.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이 세상에 행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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