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빛만으로도

공감의 세계

by 이앙꼬

다행히 제가 쓴 책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을 여럿 뵀습니다. 집사람이 펑펑 울더라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마 암 투병기를 읽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펑펑까지야 하셨겠습니까마는 제겐 넘치는 상찬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쑥스럽기도 하고, 묘한 심정이 되곤합니다.


출판을 기념해 연 피맥파티도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인연과 친분이 있는 분들만 모셨는데도 예상보다 많은 지인들께서 찾아 주셨습니다. 현장에 못 오신 분들도 다른 방법으로 성원과 정성을 전해주셨습니다. 고맙게도 가지고 나갔던 책은 거의 다 팔렸습니다. 정산 해보니 적잖은 수익금도 생겼습니다. 미리 계획한 대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해성원을 찾았습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 봉사하는 영유아보육기관입니다. 갓난아이부터 여섯 살까지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입니다. 안 크리스티나 원장 수녀님께서 예의 활짝 웃는 얼술로 맞아주십니다. 빨간머리 앤의 현신입니다. 새로 낸제 책부터 건네 드립니다. 수녀님은 연신 ’오‘, ’와‘하십니다. 꾸밈 없는 감탄사, 당신의 전매특허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시며 ”아, 많이 아프셨군요. 힘드셨겠어요“하고 물으십니다. 그냥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시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걸 보셨는지, 조금 놀랐습니다. 수녀님은 ’그냥 그 대목이 보이길래‘ 하십니다. 역시 암투병했던 대목입니다. 저는 그 물음에 또 통속적인 감상에 빠져듭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 먑니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혼자 진단받고, 혼자 병원 찾고, 혼자 예약하고 혼자 입원해 수술받고, 회복까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모든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 그랬습니다. 제 상황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상의만이라도 할 누군가 말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때의 그런 심정을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그 심정 아느냐, 누구 하나 의논할 사람도 없는, 그렇다고 몸도 성치 않은 엄마에게 얘기할 수도 없고‘ 블라블라. 별 내용도 없는 넋두리를 수녀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귀담아들어 주셨습니다. 그 바람에 더 신이 난 저는 급기야 목소리까지 떨어가며 한참을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고개를 돌려 수녀님을 보니, 저를 물끄러미 보시는 그 큰 눈망울이 그렁그렁합니다. 두 손을 기도하는 양 꼭 그러쥐시고 특유의 감탄사도 잊으신 듯 입은 꼭 다무셨습니다. 저는 적이 당황했습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한 겁니다.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체신머리도 없이 말입니다. 황급히 말문을 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후 그에게 가셨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뵙자 더 서럽게 웁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들을 말리지 않고 함께 우십니다. 그리고는 죽은 벗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 청을 들어 주실 것을 아시면서 예수님은 자매와 슬픔에 공감부터 하신 것입니다(요한 11장 참조).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형상을 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기 위함이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을 아시려 몸소 그 길을 자처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공감‘을 위한 거룩한. 걸음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내밀하게 이어주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만드는 감정의 공유입니다. 그것은 슬픔은 반으로, 기쁨은 두 배로 커집니다.


수녀님은 별말씀 없이 그저 들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제 심정을 이해하신다는 그 마음이 넘치도록 전해졌습니다.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고해라도 한듯 제 안에 쌓였던 안 좋은 감정들은 시나브로 사라졌습니다. 그저 소녀인 줄만 알았던 수녀님껜 그런 비장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새삼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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