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죽여주소서

영화로 성경읽기 - 1편 '완득이'

by 이앙꼬

요즘 고등학교 2학년이면 이미 오래 전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내고 인생을 달관(?)하는 경지에 이른 분들이랍니다. 우리의 주인공 도완득이도 그중 하나입니다. 워낙 과묵한 데다가 아이들 노는 게 참 유치해 보여 잘 끼려하지 않습니다. 이제 한 학년 올라가 더 점잖게 지내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적수를 만났습니다. 담임 이동주 선생님입니다.


그는 완득이에게 마치 호(號)처럼 들리는 별명을 지어줍니다. ‘얌먀 도완득', 선생님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그렇게 불러제끼며 갖은 방법으로 괴롭힙니다. 완득이도 남몰래 그를 ‘똥주’라 부르며 소심하게 저항합니다. 원래 이름을 조금 세게 발음한 것뿐인데 묘하게 더러운 느낌입니다. 별명뿐 아니라 완득이는 선생님께 저주를 내려달라고 기도까지 합니다.


동네 후미진 골목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완득이는 기도합니다. “하느님 똥주한테 얼마를 받으셨는지 몰라도 제가 그보다 만 원 더 낼 테니까 제발 그 똥주 좀 죽여주세요. 하느님은 돈 좋아하시잖아요. 안 들어 주시면 부처님께 갑니다.” 오, 아무리 교인이 아니더라도 그건 좀 너무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참말 엉터리 기도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시는 분께 누굴 죽여 달라니요. 게다가 당신을 돈이나 밝히는 분으로 몹니다. 벼락 맞으면 어쩌려구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 주실 리 없습니다. 그 똥주 선생님께 크고 작은 사건이 이어지고 병원 신세까지 지레 되지만 그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멀쩡히 살아 또 온갖 방법으로 완득이를 괴롭힙니다.


물론 완득이의 어이없는 기도가 진심은 아닐 터입니다. 그가 워낙 순진하고 꾸밈이 없는 아이여서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하다 보니 그런 소리가 나왔을 터입니다. 그의 나이 겨우 열다섯에 신앙에 대해선 전혀 배운 바 없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도가 뭔지,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직접적인 대화입니다. 하느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감사하며 존경을 표하며 은총을 구하는 행위입니다(한국천주교예비신자교리서). 그런 성스러운 행위에 누군가를 해쳐 달라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남의 허물을 먼저 용서해주어야 우리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마태 6. 14 참조).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완득이는 내심 선생님이 좋은 건지도 모릅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관심을 가져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애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실 형식이나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작 필요한 건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진정 감사하며 그가 정녕 잘 되기를 바라는 그런 간절함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 진심을 하느님께서는 금방 알아차리십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제자에게 똥주 선생님은 친절하게 기도의 비법을 일러줍니다. “기도는 마음속 깊이 우러나서 오래오래 해야 하는 거야.” 맞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언제나 기뻐하며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 반드시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테살 5.16-24참조).


완득이가 나중에는 그렇게 기도하는 태도를 바꾸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전교 1등에 미모까지 겸비한 여자친구가 생기고 킥복싱에 재능을 발견해 삶에 재미도 붙이고, 헤어져 살던 어머니까지 한집에 살게 됩니다. 선생님도 여전히 건강하게 생존하시는 건 물론이려니와 마침내 자기 짝까지 찾으셨습니다. 영화 ‘완득이’는 그렇게 행복하게 막을 내립니다.


통속적이지만 시종 기분 좋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개신교지만 같은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인들로서의 동질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퉁퉁거리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본성은 원래 선하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다 내려놓고 그저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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